"20년 가까이 공장을 운영하면서 처음으로 직원 월급을 못 주게 될 것 같습니다. 부도라고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문을 닫는 거죠." 2일 오후 찾은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동 양말제조업체인 신동섬유 김순희(53·여) 사장은 대뜸 통장 하나를 꺼내 보였다. 김 사장은 "한도가 8,000만원인 마이너스 통장에서 이미 6,700만원을 꺼내 써버린 데다 이번 달 일감도 6일분 밖에 안돼 봉급을 어떻게 줘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쌍방울 등 국내 대기업이나 해외 에이전트로부터 주문을 받아 생산, 납품하는 이 업체에 일감이 사실상 끊긴 것은 1월말부터다. 대기업으로부터 주문이 아예 없어졌고 어렵사리 에이전트를 통해 따왔던 해외 주문도 원재료인 원사 가격의 급등으로 단가가 맞지 않아 주문량이 크게 줄었다.
이 때문에 2월에는 채 10일도 공장을 돌리지 못했고, 3월에는 4일밖에 일을 하지 못해 수입이 고작 400만원에 그쳤다. 2월부터 비상 경영에 나서 전체 직원 20여명 가운데 남편이 직장에 다니는 아줌마 10여명은 아예 쉬게 하고, 인도네시아 출신 외국인 근로자 5명과 남자 직원 등 10여명만 출근을 하도록 했으나 일감이 없어 아예 기계 정비나 회사 정리를 하는 날이 태반이다.
친지로부터 돈을 빌리고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빼 3월 일부 수당을 제외한 월급은 겨우 줄 수 있었다. 김 사장은 "우리 나라 직원들은 어려운 사정을 알고 군 말없이 이해하는데 기숙사에서 세끼 식사까지 하는 외국인 직원들은 봉급이 깎였다고 매일 항의를 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 사장은 나라가 망했다고 난리였던 환란 때에도 이보다는 나았고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1주일에 사흘씩 야근을 해야 할 정도로 물량이 밀렸는데 1년 사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 사장은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는 불황 속에서 덜 먹고, 덜 쓰는 저소비 심리가 확산된 데다 탄핵정국까지 겹쳐 가장 먼저 타격을 받고 있는 업종이 의복이나 식음료 등 소비재인 것 같다"고 나름대로 분석 했다. 김 사장처럼 경기 의정부나 포천 지역에 있는 150여 양말제조업체 가운데 30% 이상은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아예 문을 닫는 업체도 속출하고 있다. 김 사장은 " 134평의 공장을 담보로 5억원의 은행 빚을 졌는데 버티다 정 안되면 공장을 은행에 넘겨주고 거리에 나앉는 수 밖에 없다"고 울먹였다.
섬유업체 뿐 아니라 자동차 부품 납품업체가 밀집해 있는 인천 주안주물공단이나 울산 자동차공단도 온통 한숨만 가득했다. 극심한 내수 침체로 완성차 업체의 주문이 줄어든 데다 원자재 대란에 의한 부담까지 고스란히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 주안에 있는 한 자동부품업체 관계자는 "내수가 조금 살아나 준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올 상반기를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재 가운데서도 사치품으로 인식되는 귀금속·보석 가공업체들도 폐업 직전이다. 전북익산귀금속보석단지 S사 공장장 김모(50)씨는 "홈쇼핑 방송편성에서 귀금속·보석 코너가 빠진지는 이미 오래"라며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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