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칠판 앞에 나가기 싫어요'(다니엘 포세트 글, 비룡소 발행)는 수업시간에 발표하기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친구들 앞에 서기만 하면 얼굴이 빨개지며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주인공은 칠판 앞에서 수학 문제를 푸는 날만 되면 배가 아플 만큼 괴롭다. 하지만 교단에 처음 서는 선생님도 자기처럼 떨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는, 선생님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주인공 어린이는 용감하게 나서 발표도 잘하게 된다. 이 책은 발표 공포증이 있는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데 적합하다.
이처럼 책읽기를 통해 정신건강을 지키고 정서·심리적 장애를 극복하는 것을 독서치료(Bibliotheraphy)라고 한다. 책에서 자기와 같은 상황을 발견하고 동일화하며, 문제 해결과정을 지켜보면서, 자기 문제도 없어지는 듯한 카타르시스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정신분석이론을 원용한 것이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되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독서치료 이론과 국내 현황 등을 소개한 '독서치료 연구 시리즈'(전5권, 한울아카데미 발행)가 나왔다. 독서치료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김정근 부산대 문헌정보학과 교수가 이끄는 '책읽기를 통한 정신치료 연구실' 회원들이 2002년부터 진행한 연구와 임상 사례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시리즈는 '독서치료와 도서관의 역할' '독서치료와 공공도서관 서비스' '어린이의 상한 마음을 돌보기 위한 독서치료' '성인아이 문제와 독서치료' '대학생의 문제음주와 독서치료'로 구성돼 있다. 다양한 분야의 책과 정보를 소장한 도서관을 정신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아동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구체적인 독서치료 임상사례도 담겨 있다.
저자들은 기원전 1300년경 고대 이집트의 람세스 2세가 지은 테베 궁전 도서관을 '영혼의 진료소'라고 불렀을 만큼 책과 도서관이 정신질환 치료 심리요법으로 오랜 역사를 가졌다고 강조하면서, 그 활용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2002년 경남 창녕도서관에서 '마음의 상처는 어디서 오는가' 등의 8개 주제로 실시한 독서치유 프로그램은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도서관의 역할을 새롭게 보여준 국내 사례로 꼽힌다.
또한 아동 독서치료에 대해서는 심리, 행동, 가정, 사회적 관계 등에서 문제가 있을 때 읽어볼 만한 책들도 분류해 제시했다. 이를테면 어두움을 무서워하는 어린이들에게 박쥐의 심리를 통해 자신감을 심어주는 '어둠을 무서워하는 꼬마박쥐'(게르다 바게너 글, 비룡소 발행), 왕따 문제로 고민할 때에는 '양파의 왕따일기'(문선이 글, 파랑새어린이 발행) 등을 권하는 식이다. 이밖에도 1990년대부터 독서치료 활동을 해온 이영애('책읽기를 통한 치유'의 저자)씨가 심각한 부부갈등을 겪을 당시 '인간치유의 심리학'이란 책을 읽고 극복한 사례 등을 소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3월 한국독서치료학회(회장 김현희)가 창립해 활동하고 있으며, 연세대 성균관대 충남대 등 대학과 일부 사설기관도 독서치료사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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