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의 상대적 경중을 따지는 일은 대단히 복잡한 문제이다. 특히 인터넷의 익명성은 많은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개진하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개인의 인격권 침해를 유발하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즉, 신원을 드러내지 않고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인격권 침해를 야기하게 된다.관련 연구들은 익명성이 본질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다는 위안과 만족감을 얻게 해 주며,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이용자들은 자신이 원치 않는 수많은 메시지를 경험하고 정신적 피해를 보기도 한다. 따라서 일찍부터 익명성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가 있어 왔다.
그런데 지난 2월 말 개정 선거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선거와 관련되는 표현을 인터넷에 게재하는 경우 실명으로 하도록 규정했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인터넷신문협회 등과 시민단체들은 불복종을 선언하고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실명제가 인터넷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입안자 측은 단순히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한 표현을 인터넷에 게재할 때만 책임을 지고 하라는 것이지 표현의 자유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한 표현이라는 규정이 대단히 모호하므로 결국 과도한 규제가 될 위험성이 있다는 비난이 많았다.
다시 말하자면 가장 큰 법리적 문제는 실명제 도입이 헌법에서 규정하는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즉, 기본권 간에 다툼이 있는 경우 양쪽에 비슷한 무게를 두고 따져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만일 어느 한 쪽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는 헌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실명제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구하고자 하는 공적 이익을 추구할 수는 없는가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과잉 금지의 원칙에 배치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1995년 연방대법원은 익명성을 합헌으로 인정한 바 있다. 연방대법원은 맥킨타이어 대 오하이오 선거관리위원회 사건에서 익명성은 악의적이거나 사기행위와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옹호와 이견이 허용되는 자랑스러운 전통의 일부라고 판결했다. 특히 익명성은 다수의 폭력으로부터 소수가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사회적 약자가 보복을 당하거나 사상이 억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라고 보았다. 대법원은 이러한 익명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정치적 표현이란 본질상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이것이 남용될 위험성보다는 표현의 자유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 대법원은 익명성을 개인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위하여 본질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속성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미국과는 달리 우리 법원은 인터넷에서의 익명성의 사회적 의미와 성격에 대해서 구체적인 판단이나 정의를 내리지 않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처럼 정보산업 기술과 이용이 발달한 곳에서 법원이 익명성에 대해서 구체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은 중차대한 법적 미비라고 하겠다. 이러한 공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회는 선거 관련 표현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도록 전격적으로 결정하였다.
문제는 이번 법 개정으로 인하여 진정한 의미의 언론자유의 본질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명제 실시로 패러디와 같은 정치적 표현의 경우에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고려보다는 허위사실 유포에 더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이 재 진 한양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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