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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국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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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국의 슬픔

입력
2004.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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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머스 존슨 지음·안병진 옮김 삼우반 발행·2만원

미국은 지금 역습 받고 있다.

한 손에는 '자유' '해방'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한 손에는 총을 들고 개입한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미국은 표적이 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잇따르는 폭탄 공격에 이어 매복 공격을 받아 숨진 미국인 사체가 현지 주민들에게 심하게 훼손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반미·반이스라엘 자살폭탄공격이 끊이지 않는다. 훨씬 점잖지만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한국에서는 촛불시위가 불같이 일어났다. 미 국무부가 발표하는 미국인의 해외여행 위험국가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미국을 돕는 모든 나라까지 공격 대상이 됐다.

미국에 대한 비판이 갈수록 번져가고, 공격의 강도가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는 왜 미국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것인가? 숱하게 지적된 대로 미국은 이미 제국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무력을 앞세운 과거 식민지 정복시기의 제국주의에 '무자비하다'는 수사가 붙는다면 그 단어가 '교묘하다'는 말로 바뀌었을 뿐, 본질은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UCLA 교수를 지낸 미국의 진보 정치학자이며 한반도를 비롯해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전문가인 찰머스 존슨은 '제국의 슬픔'에서 미국을 제국주의, 더 나아가 군국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낱낱이 해명하고 있다.

인용된 자료의 방대함이나 치밀하고도 일관된 논리 전개를 칭찬하기에 앞서, 이 책은 논쟁적이라는 점부터 지적해야겠다. '신문들은 정부 간행물처럼 되어 버렸고, TV 뉴스는 회사 소유주의 지시만을 따르게 됐다'는 저자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미국의 현 정체성은 물론 9·11 이후 미국의 정책이나 의회의 역할, 언론의 행태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 칼날은 미국이라는 제국이 '1980년대 옛 소련이 걸었던 길과 그리 다르지' 않고, 결국 몰락하고 말 것이라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둘러싼 논쟁이 전세계 지식인들의 화두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적지 않은 저작들이 쏟아졌지만 9·11 이후 미국의 변화를 관찰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논쟁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점에서도 주목할만하다. 이 책은 신·구 제국주의 사이의 단절성을 강조하는 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과 반대로 제국주의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역자의 지적대로 과거 군사적 제국주의와 1990년 이후 인도주의적 개입과 다자외교를 강조하는 제국의 연속성을 과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한 문제제기로도 큰 의의가 있다.

존슨에 따르면 미국은 군사력을 기반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다. 과거 같은 식민지를 가지지는 않지만, 공식적으로 725개에 이르는 해외군사기지를 통해 전세계를 요새화하고 있다. 그 요새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새로운 유형의 제국'이다. 그리고 이런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우려했던 대로 미국의 권력은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로부터 국방부나 중앙정보국(CIA) 같은 정보기관으로 이동하고 말았다.

하지만 미국은 그 때문에 네 가지 위기에 맞닥뜨릴 것이라고 존슨은 주장한다. 더 많은 테러를 겪으며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의회는 무력화하고, 국방부가 행정부를 장악하면서 민주주의가 실종될 것이다. 선전과 허위가 난무하며, 군대에 대한 찬양이 사회를 압도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대 군사 프로젝트에 자원이 집중되면서 경제는 파산하고 말 것이다. 대안은 간단하다. 의회가 국민의 대의기구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의회 개혁이다.

존슨의 지적대로 미국이 몰락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미국을 믿지 말라. 미국에 기대지는 더더욱 말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의 전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존슨의 '블로우백(Blowback)'은 지난해 삼인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됐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미국 관련 도서 5選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와 관련해 최근 국내에서 나온 책들 중 읽을만한 것들을 미국 정치학을 전공한 안병진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추천했다.

부시는 전쟁중(보브 우드워드 지음·김창영 옮김, 따뜻한손·2003년) 9·11 이후 군국주의 경향을 향한 백악관 내부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묘사한 대기자의 관찰로 '제국의 슬픔' 후반부(특히 8장)와 같이 보면 흥미롭다.

오만한 제국(하워드 진 지음·이아정 옮김, 당대·2001년) 미국의 행동하는 지성이자, 진보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이 미국 역사상의 제국주의적 모습을 냉정하게 파헤친 책. 미국의 부정적인 측면에 더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하다.

제국의 몰락(엠마뉘엘 토드 지음·주경철 옮김, 까치·2003년) 미국 군사주의가 사실은 미국의 강함이 아니라, 취약함에서 나온다는 저자의 주장은 인구학적 관점 등을 동원해 존슨의 권력론적 접근을 보완한다.

제국(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지음·윤수종 옮김, 이학사·2001년) 미국이 제국주의에서 네트워크적인 제국으로 이행했다고 주장해 전세계를 제국 논쟁으로 몰아넣은 책. 존슨의 제국주의적 연속성(미국은 언제나 제국주의적이었다)의 관점과 대조해서 읽으면 흥미롭다.

세계와 미국:20세기의 반성과 21세기의 전망(이삼성 지음, 한길사·2001년) 군사주의를 중심으로 한 존슨의 시각을 넘어 미국 외교노선의 변화를 전반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면 읽어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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