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 유스케 지음·최정옥 등 옮김 소명출판 발행·1만3,000원
북아메리카 호피족에게 시간은 이전에 이뤄진 모든 일의 뒤이다. 오늘은 어제와 똑 같고, 내일은 오늘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하루의 복수형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간을 무의미한 반복이나 낭비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같은 날이 되풀이되지만 그것은 축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케냐의 캄바족에게는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의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실현되어 있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구성할 수 없다. 이 아프리카인들은 추상적으로 무한하게 펼쳐지며 돌이킬 수 없는, 근대의 시간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일본 도쿄대 교수인 저자는 여러 시대와 문화권에서 시간을 어떻게 달리 인식하는지 살피고 있다. 서양의 시간 개념만 따져도 그리스 사상에서는 플라톤을 시작으로 아낙시만드로스 같은 자연철학자, 피타고라스 학파나 엠페도클레스를 포함해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시간의 이미지를 원처럼 순환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쪽이 지배적이었다. 원시공동체에서 시간은 '동일하게 되풀이되는 것, 대극 사이를 진동하는 것의 연속' 정도로 이해됐다. 저자는 근대화·산업화한 사회에서 거의 공통으로 받아들이는 시간 개념은 헤브라이즘과 도시 사회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으로 보는 것은 헤브라이즘처럼 오래된 반자연주의적 문화 속에서 발생했고, 시간을 추상적으로 무한화할 수 있는 등질적인 양으로 파악하는 것은 도시화 사회 내에서 발생해 확산됐다는 것이다. 시간 개념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재삼 확인하는 이유는 현대인 대부분이 근대적인 시간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결론은 '시간에 구속되지도, 허무에 빠지지도 않기 위해 시간을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으로 사고하고 살며, 시계화된 삶이 아니라 그 때의 충만하고 충족적인 의미와 감각을 잃지 않고 살아가라'는 것. 시간의 개념을 비교해서 살필 흔치 않은 기회를 주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