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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찍지않고 만나려 노력했죠"/비전향 장기수 다룬 "송환" 김동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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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찍지않고 만나려 노력했죠"/비전향 장기수 다룬 "송환" 김동원 감독

입력
2004.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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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장기수들과의 12년의 삶을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 '송환'이 지난달 28일 관객 1만 명을 훌쩍 넘어서, 1만 1,000명을 바라보고 있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1,000분의 1 밖에 안되지만, 의미있는 사건이다. 익숙지 않은 다큐도, 장기수라는 정치적 소재도 다루기에 따라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이렇다. "지루할 줄 알았는데, 2시간 28분이 금방 지나가더라.""'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예전에는 금기였던 소재가 흥행 영화가 되면서 관객들의 생각도 달라진 듯하다. 오락성에 사회성이 더해져야 관객들이 만족하는 것 같다."

'송환'의 김동원(48) 감독은 사회적 분위기를 흥행 이유로 꼽지만, 영화의 성공에는 다큐 감독 김동원의 '시각'이 첫번째 공이다. 김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되는 '송환'에서 감독은 끊임없이 혼란스러워 한다. 1992년 봄, 장기수 조창손 할아버지 등에게 교통편을 제공하면서 시작된 여러 비전향장기수와의 만남에서 감독은 때로 그들의 인간적 면모와 숭고한 희생정신에 감화되지만, 주체사상과 주석론에 대한 장기수들의 신념에는 동화되지 못한다. 남한 군사정권의 폭압적 전향공작에 대해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동시에 주민의 배를 곯리는 북한의 경제적 실정에 대해서도 원망어린 시선이 가득하다. 감독, 너무 흔들리는 모습 아닌가.

"그게 나다. 사실 그분들을 처음 만날 때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이었다. 반공교육에 의한 자동 반사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동시에 남한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이들에 대한 연민도 있었다." 호기심과 연민 뒤에는 경외심이 생겼고, 동시에 그들 내부의 권력과 위상 문제 때문에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도 했다. 감독은 남북한의 정치적 거래가 없는 '무조건 송환'을 원하면서도 영화에서는 그런 것을 웅변조로 말하지 않는다. 그런 솔직한 시선이 이 다큐 최고의 매력이다.

감독은 경주를 찾아간 한 장기수에게 가족들이 "우리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아느냐"는 원망을 하며 카메라를 트집하자, 슬며시 카메라를 들고 나온다. 할아버지들의 논리적 모순을 꼬집지도 않는다. 감독, 너무 게으른 것 아닌가.

"다큐하는 사람은 대상에 대해 배려해야 한다. 그들을 취조할 자격은 없다. 나는 그들을 만난 것이지 '찍은' 것이 아니다. 카메라가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을 보여주기 위한 대상으로 삼는 것인데, 태도까지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감독은 다큐의 윤리적 시선에 대한 책임감이 뚜렷하다. '정직한 게으름'은 영화의 관객들 그들 이야기로 편안하게 끌어들인다. 영화를 본 장기수 할아버지들의 반응은 "이념성이 약하다" "재미없어 혼났다" "그렇게 표현하는 게 나았다"등 성격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송환'은 제작기간 12년, 녹화시간 800시간. 그런데 정작 제작비가 없다. "제작비라. 놀러 갈 때 할아버지가 기름값을 냈는지, 밥값을 누가 냈는지, 그런 기억 못하니까, 제작비 개념도 없다"는 그는 "지금은 비교적 여러 극장에서 개봉중이지만 한 극장에서 꾸준히 상영하거나, 소도시에서 상영회를 갖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철거주민들과 먹고 자며 찍은 '상계동 올림픽'(87년)으로 한국 다큐의 1세대로 꼽히는 그는 사실 "한국의 스필버그가 되고 싶었던" 시네마 키드였다. 그러나 80년대 학생들이 다치고 죽는 상황을 목도하며 "영화만 하는 것은 떳떳치 않다"고 생각했다. 91년부터 인디다큐 창작 집단 '푸른영상'을 꾸려가고 있다. 기업체 홍보물이나 웨딩비디오 촬영으로 번 돈으로 생계를 꾸리고, 영화를 찍는 그에게 180명의 푸른영상 후원회원은 큰 힘이다. 독립영화제작 판매가 불법이었던 시절, 그는 그들에게 후원금을 받고 영상물을 보내주었다. 그들은 제작지원자이자 배급자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을 오랫동안 만나는 것이 다큐의 매력"이라는 그는 아직 소식이 없는 2차 송환, 원진레이온 산재환자 추적기, 상계동 뒷 이야기 등 끝날 기약 없는 여러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박은주기자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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