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밀어붙인 지난달 12일. 한·칠레 FTA 비준 등에 항의하며 추운 날씨에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노무현 정권 타도'를 줄곧 외쳤던 농민단체들은 크게 당황했다. 참여정부가 타도 위기에 몰렸으면 박수를 칠 만한데도…. 고민 끝에 나온 성명서는 이랬다. "노무현 정권을 심판할 권한은 우리 농민 등 국민에게 있을 뿐, 야당에게는 없다." 한마디로 '너흰 아니야!'였다.같은 날, 수만여명의 시민이 몰려든 국회의사당 앞 탄핵 반대 집회장. 누군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너흰 아니야 너흰 아니야 너흰 나라를 걱정할 자격 없어/ 채권에 사과사장에 이제는 아예 트럭 채 차떼기로 갈취하는 조폭들/ 그래서 너흰 아니야 너흰 아니야 제발 너흰 나라 걱정 좀 하지마/ 너희만 삥 안 뜯어도 경제는 살아날거야 너희들은 아니야."
노래는 곧 사람들 사이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거리에서 거리로, 입에서 입을 타고, 인터넷의 무수한 회로를 통해서. 촛불집회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노래가 나오면, 사람들은 발을 구르고 촛불을 흔들며 함께 따라 불렀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니네 말이 옳다 치자. 그래도 니네들은 그럴 자격 없어.' 바로 이 짧은 말이 구구절절한 여러 주장과 변명들을 압도해버린 것이다. 합법 대 불법, 민주 대 반민주, 친노 대 반노 등 탄핵정국을 규정하는 정치적 수사는 다양하지만 이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 정서는 차원을 달리 한다. 바로 이 정서를 절묘하게 건져올려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판 노래가 바로 탄핵정국 최대의 히트곡인 '너흰 아니야'였다.
윤민석(40).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사람이다. 전대협 세대에겐 '전대협 진군가'로, 월드컵 세대에겐 'Fucking U.S.A'로 더욱 친숙한 그를 서울 방배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세상을 바꾸는 힘
요즘 그는 무척 바쁘다. 인터뷰 약속 잡기도 쉽지 않았다. 그 스스로도 "민중가요가 이렇게 대중적인 호응을 얻은 적이 있었나 싶다"며 "민중가요가 이젠 국민가요가 됐다는 덕담도 들려와 기쁘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2002년 동계올림픽 당시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 사건 때 내놓은 'Fucking U.S.A' 가 젊은 층에 한정된 노래라면 '너흰 아니야'는 나이와 세대, 계층을 불문하고 공감을 얻었다. 그가 운영하는 송앤라이프(www.songnlife.com)에는 '속이 후련하다' '백 마디의 말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다' '눈물이 난다'라는 글들이 쇄도한다.
'너흰 아니야'는 사실 탄핵안가결 이전인 지난해 12월말에 발표됐던 노래다. 당시에도 틈만 나면 탄핵 얘기가 나와 그를 열받게 했는데, 국회가 또다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서청원 의원 석방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이 이 노래를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정말 뚜껑 열리는 순간이었죠."
당시 감정이 탄핵 정국에도 한치 모자람 없이 들어맞았다. 두 야당은 좀 더 일찍 이 노래를 들어야 했는지 모른다. 탄핵안 가결 이후 만든 '헌법 제1조'도 인기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문장이 가사의 전부지만, 사람의 감정을 울리는 힘이 느껴진다. 윤씨는 "이제 민중가요가 세상을 바꾸는데 조그마한 힘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대의 낙오자
이제야 자신감이 든다?. 그랬다. 90년대 그는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찾는 이였다. 한양대 무역학과 84학번. 대학 시절 우연히 접한 빛 바랜 광주항쟁의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삶이었다. '전대협진군가'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서울에서 평양까지' 등으로 전대협 세대에겐 너무나 익숙한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90년대 중·후반 그는 시대의 낙오자 같은 신세로 몰렸다.
92년 이른바 '조선노동당 사건'으로 3년을 복역하고 나오니 세상은 옛날의 그곳이 아니었다. 엊그제까지 함께 노래하던 동료들은 하나 둘 짐을 싸고 떠나갔다. '민중가요가 노래냐' '사운드가 구리다'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음악을 하냐' '민중가요해서 먹고 살 수 있냐' 등등 무시와 비아냥이 숱하게 쏟아졌다.
"왜 변해야 하는지 아무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다들 세상이 바뀌었으니까 따라 변해야한다고 했죠.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정말 이 길이 잘못된 것일까. 그렇다면 나 혼자라도 끝까지 가보자. 우물을 파서 '여기 물이 안 나오니까 다시는 오지 마라' 그런 팻말이라도 걸 수 있게끔 끝장을 보자는 심정이었죠."
잔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지가 떠난 그곳에서 그는 거의 홀로 깃발을 잡고 남았다. 그에게 세상은 여전히 모순 덩어리였다. 카드빚에 쫓긴 부모는 자식과 함께 자살하고, 우리 미래를 짊어져야할 청년세대 태반은 백수이며, 노동자들의 지위와 생계는 날로 추락하는데도 정치판만 검은 돈에 기대 '태평세월'을 노래한다.
황무지와 다름없는 민중가요판에서 2001년 인터넷사이트 송앤라이프를 열고 다시 시대와 맞섰다. 2002년 'Fucking U.S.A'로 그의 건재를 알린 이후, 부시 미 대통령을 비꼰 '기특한 과자', 미 보잉사의 F15 전투기 강매를 꼬집은 '종이비행기', 남북대치의 희생자인 연평도 어민의 삶을 노래한 '연평도의 꿈'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지난 대선 때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비판한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어'를 내놓았다가 피소돼 벌금형을 받았다. 때문에 '너흰 아니야'에서는 특정 정당을 밝히지 않고 '개 짖는 소리'를 삽입했다고 한다.
그의 노래에는 늘 '정치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지난 대선 때처럼 이번 탄핵정국에서의 촛불시위도 결과적으로 특정 정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게 사실이다. 대학 노래패 후배였던 열린우리당의 임종석 의원과의 각별한 관계는 종종 그를 삐딱하게 보는 근거가 된다. 그를 통해 운동권에 '입문'한 임 의원이 전대협 의장에 당선되자 선물로 '전대협 진군가'를 지어줬던 것도 그였다.
"너도 노빠냐, 열린당에서 한 자리 받겠네, 그런 비아냥도 많이 들어요. 이라크 파병이나 한·칠레 FTA 비준 때는 열린당을 엄청 깠는데, 잘 모르나 봐요. 근데, 탄핵 비판이 열린당을 위한 겁니까. 열린당도 착각하면 안되죠. 다시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면, 촛불 집회의 화살이 부메랑처럼 열린당을 향해 갈 겁니다."
국민의 힘을 믿지만…
사막에서 홀로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살아온 그가 이제 샘물을 발견한 것일까. "촛불 집회와 거기서 분출된 우리 국민의 힘을 보고 감격했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후배들에게 "민중가요 할 만하니 여기로 와라"라고는 말하지 못한다. "여전히 힘들고, 배를 곯는 곳이죠. 잠깐 관심을 받다가 헐값에 매도당하기도 하고요. 아직 더 파 들어가야 합니다. 언젠가 자신있게 '너희들도 이 곳으로 오라'고 말할 날이 오겠죠."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민중가요 산본 송앤라이프
윤민석씨가 2001년 만든 송앤라이프(www.songnlife.com)는 민중가요 창작집단이자 온라인 보급창고다. 윤씨 외에도 오지총, 박태승씨가 곡을 만든다.
이 사이트에선 누구나 무료로 노래를 다운 받을 수 있다. 다른 사이트는 불법 복제를 걱정하지만, 윤씨는 '아무나 퍼 가라'고 권장한다. 그것이 민중가요의 생존방식이라는 생각에서다. 더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더 많이 불려야 민중가요의 생명력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대신 회원들의 자발적 후원금으로 사이트가 운영된다. 매월 1만원의 후원금을 고정적으로 내는 정식회원에 가입할 수 있고, 노래마다 천원의 후원금을 낼 수도 있다. 그동안 판매용 음반을 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후원금이라고 해봐야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 2002년 'Fucking U.S.A'가 떴을 때도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주변으로부터 '왜 그렇게 수완이 없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작심하고 판매용 CD를 내놨다. '너흰 아니야'를 타이틀곡으로 귀에 익은 13곡의 민중가요를 담았다. "결국 너네도 돈 벌려고 하는 짓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팠어요. 돈 벌려고 했다면 이런 일 했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모든 걸 경제적 논리로 돌려버리죠. 이제 제 일에 대한 자신감이랄까요. 그런 게 생겼습니다. 음반이 많이 팔려 돈도 좀 벌어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하고, 후배들과 함께 갈 수 있는 밑천을 모았으면 합니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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