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와 원달러 환율 급락으로 기업들이 비상이 걸렸다.유가에 민감한 기업들은 재고 사용량을 늘려, 수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에너지 절약 등을 통해 원가부담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수출업체들도 원·달러환율에 따른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 수출과 결제시기 등을 조절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고유가 가격 인상 현실화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 등 해운업계는 1일부터 40피트 컨테이너를 기준으로 운임 가운데 유류할증료를 185달러에서 230달러로 24% 올렸다. 현대상선은 고유가 행진이 계속될 경우에 대비, 선박들이 유가가 상대적으로 싼 싱가포르, 함부르크 등에서 급유를 하도록 하고 경제속도를 유지, 기름을 절약하도록 했다.
내수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자동차업계는 고유가가 계속될 경우 결국 자동차 이용과 수요의 감소로 이어져 승용차 판매가 4만∼12만대 감소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유업체인 SK(주)는 기존 중동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수입선을 아프리카나 남미 등으로 확대해 나가고 예멘과 이집트 등지에서의 원유개발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LG칼텍스정유도 원유도입선 다변화 정책 확대와 함께 원유 시장별 다양한 가상 시나리오 및 상황별 비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정유업체들은 이와 함께 원유 및 석유제품에 대한 세금 감면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원유에서 나오는 나프타(납사)를 원재료로 사용하는 화학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LG화학은 재고를 최대한 사용하고, 수입을 자제키로 했다. 삼성아토피나는 원유가격이 1달러 올라가면 납사가격이 톤당 9∼9.5달러 올라가 원가부담이 가중되는 만큼 에너지 현황을 파악해 리모델링하는 방법으로 원가 10%를 절약하기로 했다.
고유가의 직격탄을 맞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등 항공사의 경우 올 구매 예상가를 각각 30달러, 31.62달러로 정하는 등 방어대책을 마련해 놓아 여파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러하락으로 수출업체 비상
LG전자는 지난해 초부터 환율하락을 예상, 평균 환율을 보수적인 1,110원으로 책정해놓았다. LG전자는 환차익보다는 '환 리스크 제로'를 목표로 헤지 비율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고 수입과 수출을 시기적으로 매치시켜 환차손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특히 한 달 단위로 환율전망을 받아 수출입결제를 해 오던 것을 하루 단위로 전환하고 유로화 결제비율을 올려 통화를 다변화했다.
삼성전자는 인위적인 환관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업조정 등을 통한 원가절감 노력을 통해 원화 강세에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또 사업부 담당자별로 강세 통화로 결제를 하도록 하고 원화 강세에 대비해 조기 환전을 하는 등 외환 자산을 최소화해 운영하고 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박일근기자 ilpark@hk.co.kr
■"고유가시대 원高" 그나마 다행
수출에 주는 일부 부담에도 불구, 현재 여건상 원고(高)는 국가경제 전체론 별로 나쁠 게 없다. 원화가치 강세에 따른 환율하락이 국내물가 불안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는 고유가 충격을 상당부분 흡수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 국내경제는 고유가·고원자재가격→물가상승→구매력 저하→소비위축 심화→체감경기 악화가 심각히 우려되는 상황. 금리를 통한 물가불안 제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환율은 더 이상 내수가 얼어붙거나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인플레)으로까지 번지는 것을 막아줄 유일한 수단이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유가가 10% 오를 경우 소비자물가는 당장 0.3% 상승하게 되지만, 환율이 10% 낮아지면 물가를 1.8%가량 낮추는 효과가 생긴다. 한은 관계자은 "현실적으로 환율이 물가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환율하락이 수출과 경상수지에 다소 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원·달러환율 하락폭은 엔·달러환율보다 훨씬 완만하다. 31일이후 원·달러환율이 3년4개월만에 최저치인 1,140원대로 하락했음에도 불구, 원·엔환율은 100엔당 1,090∼1,100원대로 되레 상승했다. 원·달러환율 하락으로 중국 등 개도국에 대한 수출경쟁력은 다소 낮아지겠지만, 원·엔환율 상승에 따라 대일(對日) 경쟁력은 오히려 높아지게 됐다.
유가(두바이 기준)가 당초 예상보다 5달러 가량 높은 배럴당 30달러선을 지속할 경우, 연간 40억 달러의 경상수지 악화요인이 발생한다. 하지만 지난달 수출은 월간 사상최대치를 기록했고, 경상수지 흑자도 1·4분기에만 70억 달러에 이를 만큼 여유가 있다. 거시경제운용의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수출보다는 내수, 경상수지보다는 물가가 급한 만큼 '고유가+원고'는 스태그플레이션 방지를 위해 다행이란 평가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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