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등학교 시절 독서경시대회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친 시험이었다. 이 시험을 위해 선생님들은 몇 명씩 골라 합숙까지 시켰고, 학생들은 학교의 명예를 빛내기 위해 선생님이 던져주는 책을 읽고 외워야 했다. 책의 주인공은 누구이고, 배경은 무엇이며, 교훈을 찾아내기에 바빴다. 그렇게 시험을 치르고 나면 오랫동안 책을 쳐다보기도 싫었다.그 독서시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일부 독서지도교사 등이 참여하는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이 17일 실시하려는 '제1회 독서능력검정시험'이다. 물론 그때처럼 강압적인 것은 아니지만, 교묘한 방식으로 추진돼 폐해가 우려된다.
먼저 시험출제 대상인 도서목록을 검토한 전문가들은 객관성과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10단계를 두는 근거도 애매하고, 각 단계의 기준에 포함된 책들의 수준도 들쭉날쭉하여 평가시험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다 큰 문제는 상업성이다. 사교육업체가 이 시험의 후원사로 버젓이 등장하고, 시험출제까지 관여했다는 의혹도 있다. 이 업체는 이미 독서목록 600권과 지도 프로그램에 관한 특허까지 내놓은 상태이다. 게다가 일부 교육청 간부까지 이 업체의 독서지도 집필진으로 나서 시험을 권유하고 있다니 기가 막힌다.
이들은 자신들이 교육부 소속 법인이라고 공표하고, 각 학교에 보낸 안내공문에 시험 성적이 생활기록부에 등재된다는 허위사실까지 담아 학부모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쯤 되면 독서를 교육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컴퓨터, 한자, 수학 인증시험에 이어 이제는 독서까지, 다음에는 뭐가 사교육 대상으로 등장할까.
최진환 문화부 차장대우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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