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원(35)는 좋은 배우다. 성실한 무대 매너, 무대 위에 모든 걸 쏟아붓는 열정은 높이 살 만하다. 혼자서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1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아놀드 웨스커 작·임영웅 연출)는 누가 해도 벅찼을 작품이다. 최정원은 뮤지컬 배우답게 손수 고른 다섯 곡의 노래를 곁들여가며 훌륭하게 35세의 외로운 가수 역을 해냈다.이제 막 봉오리 피어오르듯 가슴이 커지는 열 한 살의 딸에게 어머니가 편지를 쓸 생각을 한다. 사랑하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는 딸에게 미안한 마음에 쓰는 편지이기도 하지만 '엉망인 서른 다섯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나는 지나온 삶을 반추하며 회한과 기쁨, 슬픔과 사랑의 기억과 마주한다. 나는 '막 굴린 인생'을 후회하며 '넌 절대로 나처럼 되면 안 돼'라며 딸에게 편지를 쓴다.
그러나 편지 한 장 제대로 써보지 않았으니 어디 그게 쉬우랴. 첫 문장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녹음기와 피아노, 자신의 노래 부르는 모습을 담은 커다란 포스터가 걸린 방이 무대다. 최정원은 딸부터 자신의 담당 의사, 아버지 등을 흉내내며 홀로 편지를 쓴다. 최정원은 아이의 목소리부터 고혹적인 여인의 목소리를 오가며 복잡한 여인의 내면을 무대 위에 꺼낸다. 피아노로 뽕짝 풍의 노래를 치며 딸에게 보낼 편지 줄거리를 말하는 대목에선 코미디를, 아버지와의 옛날을 떠올리는 대목에선 눈시울을 붉히는 드라마를 선사한다. '나는 여자이니까' '메모리' 등에선 등골이 서늘할 만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무대를 꽉 채운다.
때때로 무대가 허전해 보이기도 했다. 무대를 뒤덮을 카리스마는 조금 더 시간을 기다려야 할 듯하다. 무대는 좋은 배우를 더 큰 배우로 만들기 위한 도가니로 보였다. 분장실에서 만난 그는 "무대 위에서 너무 외롭다"고 했다. 그 외로움이 그를 더 깊게 만들 것이다. 11일까지 산울림소극장.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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