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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70>브라지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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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70>브라지야크

입력
200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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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3월31일 프랑스 작가 로베르 브라지야크가 페르피냥에서 태어났다. 당대 프랑스 지식인 가운데서도 두드러지게 명석했던 이 작가는 36세로 죽었다. 그러나 이 죽음은 '천재의 숙명적 요절' 같은 낭만주의 신화와는 거리가 멀다. 브라지야크는 1945년 2월6일 파리 근교 몽루주 요새에서 반역죄로 총살당했다. 그 해 1월 부역자 재판에서 그에게 사형이 선고되자 폴 발레리, 프랑수아 모리아크, 콜레트를 비롯한 수많은 동료 문인들이 임시 정부 수반 드골에게 브라지야크의 사면 또는 감형을 청원했다. 그들은 동료 작가의 재능을 아까워했다. 그러나 드골은 역사의 대의 쪽을 선택했다.브라지야크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프랑스의 숙청 재판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난 지식인이었다. 그의 다재다능은 성장기부터 빛났다. 그 나라 수재들의 둥지라는 파리 루이르그랑 고등학교와 고등사범학교에서도 브라지야크의 명석함은 교수와 동료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는 소설가이자 비평가이자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다. 그러나 브라지야크는 점령기 프랑스에서 부역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지식인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편집을 책임지고 있던 '주쉬파르투'지를 통해 조금도 거리낌없이 친독 파시즘과 반유대주의를 선동했다.

브라지야크가 단지 작가이기만 했다면, 그의 극우 이념은 문학적 장치를 통해 그럴듯한 화장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의 문학 작품 속에서 그의 파시즘을 읽어내기는 사뭇 까다롭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기자를 겸했다. 그것도 정치에 자신을 구속시킨 기자였다. 이미 전쟁 전 극우 신문 '악시옹프랑세즈'의 문예면 편집자였던 브라지야크는 점령 기간 동안에도 기자로서 자신의 파시스트 세계관을 또렷이 드러냈다. 그리고 그가 쓴 기사들에는 그가 부역 혐의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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