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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이민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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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이민 권하는 사회

입력
200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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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절 나에게는 결코 30대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벌써 30대 중반이다. 빠듯한 직장생활에 재충전의 시간이라는 주말은 끊이지 않는 경조사 아니면 처가와 본가에 빼앗겨 버린 지 오래다. 그래도 '얼굴 잊어 버리겠다'며 어렵게 짬을 내서 만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알싸하게 넘어가는 소주 한 잔에 지난 추억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안주 삼아 시간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이 있다.얼마 전 모처럼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다. 고정 멤버 가운데 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두 친구 모두 해외로 이민을 떠났다. 두 친구 모두 남부럽지 않은 안정된 직장에 다니던 터라 이민을 떠날 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른 친구들 말로는 아이들 교육 문제가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거세게 몰아치는 이민 열풍이 새삼 남의 일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들이킨 소주 맛이 씁쓸했다.

30대 중반의 나이. 결혼으로 개인이 아닌 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 때문인지 뒤돌아볼 시간 없이 바쁘게 살아오던 우리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그 날 술자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거운 분위기로 흘러갔다.

"한 달에 얼마 저축하냐?" "전세값이 얼마가 뛰었더라" "유치원부터 사교육비가 많이 들더라" 등등. 오랜 만에 만나 그간의 회포를 풀어야 할 자리가 신세한탄의 장이 됐다.

직업적인 이유로 아침마다 거의 모든 신문을 읽게 되는데 어제 오늘 이유없이 죽어가는 아이들의 소식은 심상치가 않다. 같은 반 친구를 왕따로 만들고 그 장면을 자랑스럽게 자기 홈페이지에 올리는 대담한 아이들의 소식도 그렇다. 정치판의 무질서가 사회 전체로 전파되는 느낌이다.

무분별한 탈출도 문제이지만 아무 대책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현명하지는 않다. 맹목적인 자위 역시 문제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저울의 한 쪽 추가 자꾸 녹슬고 낡아서 기우는데도 계속 무시한다면 저울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어제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받았다. 지난 번 술자리에서 이민 간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녀석이다. 술 한 잔 하자는 의도가 무엇인지 벌써부터 불안하다.

또 한 친구를 떠나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요즘에는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헌 동 (주)케이앤어쏘시에이츠 PR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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