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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문제다" 美 심포지엄 참가기/언어의 壁 못 넘으면 "하루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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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문제다" 美 심포지엄 참가기/언어의 壁 못 넘으면 "하루키"는 없다

입력
2004.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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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교환교수로 있는 황종연(44) 동국대 교수가 26, 27일(현지시간) 동아시아 문학을 주제로 이 대학에서 열린 대규모 국제학술대회 '번역이 문제다'의 참가기를 보내왔다. 인도 출신 여성 학자로 탈식민주의 문학비평의 대가인 가야트리 스피박, 일본의 저명한 철학자·문학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과 동아시아 지성사 연구로 잘 알려진 사카이 나오키 등 세계적 학자들이 발제·토론한 이 학술대회에 한국에서는 소설가 오정희, 김영하씨와 황 교수가 참가했다./편집자 주

번역이란 무엇인가, 번역과 창작은 어떤 관계인가, 번역은 민족문학과 초(超)민족문학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번역은 지구시대의 문학시장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리고 번역은 어떻게 해서 정치와 얽히는가. 동아시아문학을 번역에 초점을 맞춰 새롭게 조명하는 국제학술대회가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에서 26, 27일 이틀간 열렸다. '번역이 문제다― 초민족적 관점에서 본 동아시아문학'이라는 제목 아래 열린 이 학술대회에는 미국, 중국, 대만, 일본, 한국에서 총 34명에 달하는 작가, 학자, 번역가, 편집자가 참여하여 열띤 발표와 토론을 벌였다.

한국에서는 소설가 오정희, 김영하씨와 필자가 참가했다. 한국 정부나 재단에서 기획한 한국문학 홍보행사가 아닌, 순전히 미국대학의 주도로 기획된 문학 학술대회에 한국측 인사가 정식으로 초청되어 발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문학 권위자로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의 영어권 번역자인 스티븐 스나이더 콜로라도대 교수는 한국문학의 등장에 반가움을 표하며 미국 동아시아문학 학술대회 관례로 보면 '혁명'이라고까지 말했다.

폴 앤더러 컬럼비아대 교수가 행사 기획과 진행을 맡았고 컬럼비아대 동아시아언어문화과 등이 후원했다. 행사 첫날은 인드라 레비(럿거스대), 자넷 풀(뉴욕대), 마이클 베리(샌터바바라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각각 일본 소설가 다야마 가타이, 한국의 이태준, 중국의 우허를 대상으로 근대 동아시아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역사와 문화의 이동을 다룬 논문 발표로 시작됐다. 이어 '아시아를 번역하기' 분야에서는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아시아계 미국인 학자 사카이 나오키(코넬대), 리디아 류(미시건대), 그리고 탈식민학의 대가 가야트리 스피박(컬럼비아대)이 번역을 둘러싼 이론적, 정치적 문제를 제기하여 관심을 끌었다. 또한 전문 번역가들인 하워드 골드블래트, 실비아 린(중국문학) 알렉산드로 게레비니, 마이클 엠리히(일본문학) 브루스 풀턴(한국문학)이 한자리에 모여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번역에 관한 토론을 벌였다.

둘째날에는 책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일본 근대문학의 새로운 역사 서술을 제안한 존 즈위커(미시건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어권 시장에서의 성공을 사례로 삼아 문학 번역을 지배하고 있는 새로운 시장 메커니즘을 분석한 스티븐 스나이더 교수의 논문이 나왔다. 이어 가라타니 고진(일본 킨키대)이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을 이룬 번역에 대해서, 랴오 핑회이(중국 칭화대)가 식민지 시기 대만의 풍경을 발견한 일본인 화가의 미학과 정치학에 대해서, 필자가 한국근대소설의 초민족적 원천에 대해서 발표했다. 미국의 동아시아문학 관련 전문 편집장들인 컬럼비아대 출판부의 제니퍼 크루 등도 실무 경험에 입각한 토론을 벌였다.

행사 마지막에는 학술대회에 초청된 작가들이 자기 나름의 번역론을 내놓고 아울러 자기 작품을 읽는 차례가 있어서 특히 많은 관심을 끌었다. 첫날에는 오정희씨, 일본 소설가 미즈무라 미나에와 우허가, 둘째날에는 김영하씨와 소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로 국내에도 알려진 다카하시 겐이치로, 중국 소설가 시 슈칭이 나왔다. 오정희씨는 '동경' 중의 한 구절, 김영하씨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중의 한 구절을 읽었고 통역자 브루스 풀턴과 자넷 풀이 각각의 번역문을 읽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 문학시장의 확장, 문학에 대한 초민족적, 초국가적 인식 등 최근의 현안을 동아시아문학 맥락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그리고 동아시아문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국제적 시각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특히 한국문학의 존재가 미국의 학술대회를 통해 가시화되었다는 것도 기념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영어권에서 한국문학 번역 및 연구 기반이 온갖 투자에도 불구하고 아직 허약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황종연·동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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