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이후 수많은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비분강개하는 내용이 주종을 이루지만, 중견 소설가 36명의 시국선언문은 다른 글과 다른 것을 담고 있었다. '남겨진 6월 항쟁의 뒷페이지를 위하여'라는 수사적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다. 냉철하지만 분노에 찬 선언이었다.<…서사를 창조하고 기록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우리 소설가들은 가치의 진정성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우리는 1987년 6월 항쟁이 휩쓸고 간 그 거리에 다시 섰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6월 항쟁의 뒷페이지를 제대로 기록하지 못했다. 그것을 엄숙하게 반성하면서 등이 휘는 무거운 작가적 실존으로 미완의 6월 항쟁, 그 뒷페이지의 서사를 국민들과 함께 장엄하게 마무리할 것이다.>
이순원 성석제 은희경 등 문단의 등뼈에 해당하는 젊은 대표적 소설가들이 처음 연명으로 목소리를 냈다. 평소 저마다 다른 작업을 추구하면서 현실정치의 전면에 잘 나서지 않던 작가들이 분노로 침묵을 깨트린 것이다. 문맥으로 미뤄 이들 대부분은 평화적 촛불집회에 참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선언문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탄핵의 반민주성과 정치적 혼란은 6월 항쟁을 마무리 못한 데서 비롯된다는 역사적 통찰이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 지식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문장이 있다. "과거에 눈 감는 사람은 현재에도 눈 멀게 된다." 1985년 서독 바이츠제커 대통령의 기념연설문 구절이었다. 2차 대전 종전 40년을 기념하던 같은 날, 일본 나카소네 총리는 A급 전범을 추모하는 야스쿠니 신사에 공식 참배했다. 전쟁책임이 있던 두 나라의 지도자들이 철저하게 대조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세계인의 공감을 샀던 바이츠제커의 역사 반성 구절은 하나의 소중한 잠언이 되었다.
27일 저녁, 식구들과 교보문고 앞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가 보았다. 태평로 건너 편에서는 반대 입장의 집회가 열리는 가운데 마지막 열린 대규모 집회였다. 종로 1가를 꽉 메운 집회였으나, 어쩐지 동네 축제 같은 소박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주로 퇴근한 직장인과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모여 이룬 촛불의 흔들림은 저녁 어스름 속에서 따사롭고 장엄해 보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희구가 수많은 촛불에서 촛불로 이어지는 듯했다.
그것은 주최측이 내세우는 문화 행사였던가, 아니면 사법당국이 예의주시 하는 정치 집회였던가. 그 중간 어느 지점에 자리잡은, 시민의 자발적 모임이었을 것이다. 해방 후 50년 간 계속된 독재체제에서 겨우 민주화의 문턱을 넘어선 우리 사회에 딱 어울리는, 어중간하고 모호하고 절충적인 '문화정치행사'였던 것 같다. TV에서 촛불시위에 관한 찬반토론이 끊이지 않고 있으나, 양면성을 지닌 촛불집회의 위법성 여부를 명쾌하게 단정하는 것은 바보에게나 쉬울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 말처럼 불은 물·공기보다 이중적이며, 좋은 것인 동시에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36명의 작가들은 선언문에서 왜 6월 항쟁을 떠올린 것일까. 1987년 항쟁은 전두환 군사독재 세력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 세력의 힘 겨루기였다. 당시 민주화의 어린 싹까지 자르려 했던 군부는 시민의 도도한 민주화 요구를 감당하지 못하자, 투항함으로써 위기를 겨우 모면했다. 시민세력은 작은 승리에 취해 민주화의 능선에서 멈춰 서고 말았다.
지금도 탄핵을 주도한 세력의 뿌리는 군사독재 체제에 닿아 있다. 그들의 인맥을 보면 자명하다. 그들의 폭력적 탄핵절차는 합법이었으나 지지를 얻지 못했고, 평화적 촛불시위는 당국이 '불법'으로 규정했으나 시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긴 안목으로 조망하지 않으면 역사의 지형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 때문에 6월 항쟁과 지금을 비견하는 작가들의 통찰력이 새삼 소중해 보인다. 고쳐 말해 본다. 과거에 눈 감는 사람은 미래도 외면하게 된다.
박 래 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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