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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본다]2부 변화하는 일본사회 ⑤ 불평등사회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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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본다]2부 변화하는 일본사회 ⑤ 불평등사회 일본

입력
2004.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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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1990년대의 장기 불황을 거치면서 고용 불안이라는 문제가 대두됐다.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미 기회의 평등이 보장돼 있다는 말은 설득력을 상실하고 있다. 즉 세대간 계층 이동이 발생할 수 있는 기회의 개방성이 줄어들고 중간계급의 사회적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 사회는 새로운 사회통합 원리를 모색해야 하는 지점에 도달해 있다고 볼 수 있다.전후 일본에서는 고도 경제성장을 거치면서 특정한 개인이 '권력', '부', '위신'을 한꺼번에 갖는 일은 드물게 됐다. 말하자면 돈이 있다는 것과 권력이 있다는 것은 상관 없는 일이 된 것이다. 재벌이 해체돼 버렸으므로 거대기업은 있어도 개인 갑부는 없는 사회가 됐다. 민주화 과정에서 황족, 화족(귀족), 군부의 장교집단, 지주가 몰락하는 등 전전의 권력층은 직업관료만 남겨놓고 모두 사라졌다. 또한 돈이나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높은 존경을 받는 것도 아니게 됐다. 많은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0% 이상이 자신의 계층을 '중류'라고 대답하고 있다. 일본 사회가 두터운 중산층으로 균질화 돼 있다는 의미를 가진 "1억 총 중류화"가 실현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왔다.

일본 사회학자들은 계층을 반영하는 요소인 학력, 직업위신, 소득이라는 세 가지 지위 간의 상관관계를 장기간 측정해 왔다. 고도성장기에는 지위간의 상관관계가 약화돼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1973년의 4차 중동전과 제1차 석유파동을 겪고 나서는 고도 경제성장이 끝났을 뿐만 아니라, 지위간의 상관관계가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 즉,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갖게 되고 없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게 됐다는 위기의식이 퍼지게 됐다. 특히 거품경제가 진정되고 자산가치가 폭락하는 1990년대를 거치면서 중류의 붕괴와 '신계급사회'의 등장을 지적하는 논의가 고조되고 있으며, 학력 격차가 계층간 격차를 악화시킨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전후 일본에서는 실리추구적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산업 노동자 집단과 중간 관리자 집단이 성장했다. 자영업자 집단도 온존했다. 계급투쟁을 완화시키는 중간 완충지대가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국제화와 함께 시장개방과 규제완화가 진행되면서 자영업자 집단의 경제적 기반이 위협받게 됐다. 거품경기가 퇴조한 이후에 기업의 구조조정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중간 관리자 집단 사이에서는 회사가 고용을 보장한다는 믿음이 없어졌다. 고도 경제성장기에는 하층 산업 노동자가 다른 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으나 고도성장이 끝나면서 상승 이동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감소되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에는 전문관리직 종사자가 세대를 넘어 재생산되는 경향이 뚜렷해 졌다. 말하자면 변호사나 회계사의 자식이 부모의 직업을 물려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 사회에서 개인이 능력을 발휘해 처지를 바꿀 수 있는 기회의 개방성이 축소되는 증거로 해석되고 있다.

국제비교를 해봐도 일본에서 개인의 의지와 노력으로 사회적 지위가 바뀌고 세대간 지위 이동이 발생할 기회는 미국이나 영국보다 오히려 폐쇄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피고용자만이 아니라 자영업까지 포함시켜 보면 전문적, 관리적 직업의 상속 경향은 전전과 전후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양호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는 기간에는 능력주의 사회라는 설득 논리가 사회통합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계급이라는 고전적 쟁점을 다시 등장하게 만든 최대의 요인으로는 1980년대 후반의 거품경기를 들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봉급 생활자가 자기 힘으로 집을 가질 수 있는 희망이 줄어들었고, 재산의 상속 가능성이 개인의 지위에 대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평범한 회사원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더구나 학력사회라는 말로 표현되는 바와 같이 일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가 계층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면서 개인이 느끼는 좌절감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자녀 세대에게도 영향을 미쳐 입시경쟁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공부 잘해야 훌륭한 사람 된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됐다. 따라서 상급학교 입시를 위주로 조직된 학교생활에 반항하는 청소년이 늘어나 '교실붕괴' 현상이 확산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거품경기 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의 소득 분배 구조는 급속하게 악화됐다. 자산 분배구조는 더욱 빠른 속도로 나빠졌다. 일본은 선진 자본주의 진영에서 가장 불평등도가 높은 사회가 됐다. 특히 이런 현상이 단기간 동안에 진행됐으므로 '1억의 일본인 모두가 중류'라는 믿음이 붕괴되고 사회적 불안감이 높아지게 됐다. 결국 근본적인 사회개혁의 필요성이 촉구되고 있으나 이를 구상하고 집행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분명하지 않다.

이 종 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50세 서울대 사회학과 졸, 일본 도쿄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저서-일본의 지방자치와 노동행정(한국노동연구원) 등

■"日, 선진국중 빈부差 가장 커"

일본에서 '평등사회붕괴논쟁'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것은 다치바나키 도시아키(橘木俊詔) 교토대 교수의 저서 '일본의 경제격차'(이와나미)가 출간된 1998년부터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일본이 그동안 세계에 자랑해 온 '평등사회'의 신화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자 당시 일본 사회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다치바나키 교수는 빈부격차와 계층간의 소득분포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이용, 일본의 소득격차가 1980년대부터 급격히 증가해 선진국 중 가장 빈부의 차가 큰 나라로 돼 가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사토 도시키(佐藤俊樹) 도쿄대 교수의 책 '불평등사회 일본'(주코신쇼·2000년 발간)도 논쟁을 확산시킨 중요한 연구서 중의 하나이다. 사토 교수는 자녀의 소득·직업계층이 부모에게 종속되고, 계층간 이동현상이 제약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지적하며, "일본이 불평등·계급사회로 변질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반론은 연구방법상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에서부터 감정적인 비판까지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예를 들어 지니계수의 악화는 일본사회의 고령화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 사회가 실제로 불평등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또한 "중류층이 붕괴한다는 가설은 검증되지 않은 소설에 불과하다 "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함으로써 불평등 사회론은 일본 사회현상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화두가 됐다.

그러나 사실 이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무라카미 야스스케(村上泰亮·작고) 도쿄대 교수는 1978년 '신중간대중론'(주오코론사)을 제시하며 소위 '일억총중류계급론'을 옹호하려고 했다. 이에 대해 기시모토 시게노부(岸本重陳·작고) 요코하마국립대 교수는 '중류의 환상'(고단샤간)을 통해 무라카미 교수의 '신중간대중론'의 허구성을 통렬히 비판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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