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이해하기 힘든 도시야. 적어도 먹을 것에 관한 한. 6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고도에 100년 된 음식점 한 곳이 없다니….' 외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나올 법한 의문이다. 실제로 외국인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경험도 없지 않다. 음식에 대한 그들의 물음은 대개 비슷하다. 한국음식 중 무엇을 추천할 수 있느냐, 그 음식점이 유명하다면 얼마나 오래됐느냐, 바로 두 가지다. 생명이 긴 음식점이라면 맛도 당연히 좋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듯했다. 그러면서 대개는 먼저 불고기를 언급하곤 했다. 유감스럽게도 선뜻 떠오르는 식당이 없었다. 웬만한 음식점이면 불고기 정도는 다 잘한다고 얼버무려야 했다. 성북구 길음동의 '옥돌집'은 반세기 넘게 불고기를 으뜸메뉴로 내놓고 있는 노포다. 정부수립 이듬해인 49년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창업 55주년이 되는 셈이다."외삼촌이 음식점을 처음 시작한 이래 서울식 불고기의 전통을 지켜왔다고 자부합니다. 값도 가능한 한 고객의 주머니 사정에 맞추려고 노력했고요." 옥돌집 대표 김영덕(60·金榮德)사장과 부인 왕영희(53·王英姬)씨가 말하는 장수의 비결이다. 서울식 불고기의 전통의 맛은 어떤 것일까. 육질이 무척 부드러운데다 독특한 양념장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맛이 이 집 불고기의 풍미다. 달착지근한 맛도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덜하다. 단골손님들의 평가다. 나이 든 고객일수록 "옥돌집 불고기는 여전히 맛이 있다"고 좋아한다.
창업자는 김사장의 외삼촌인 고 신옥돌(申玉乭)옹이다. 미아리 일대에서 농사를 짓던 신옹은 생계에 보탬이 될 부업을 찾다가 불고기집을 차렸다. 상호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내걸었다. 마침 부인이 음식솜씨도 있던 터였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렵고 먹거리도 귀하던 시절 신옹부부의 넉넉한 인심이 고객의 발길을 재촉했다. 부부는 저울눈금을 개의치 않고 양재기에 고기를 듬뿍 담아 내놓았다. 손님들은 우선 주인부부의 인심과 푸짐한 양에 놀랐다. 그리곤 불고기의 맛에 또한 번 놀라게 된다. 옥돌집은 손님에게 편리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60년대 미아삼거리에서 숭인초등학교 부근으로 옮긴 뒤 지금 장소로는 70년대 이전했다.
김사장은 90년 초 외사촌형(신원준)에게 옥돌집을 물려 받았다. 외사촌형이 식당운영을 돕던 동생의 됨됨이와 성실성을 믿고 직계가족 대신 대물림 적임자로 결정한 것이다. 외사촌형이 간곡하게 당부한 조건은 두 가지였다. 옥돌집이라는 상호를 결코 변경해서는 안되며, 이후로도 옥돌집의 명성을 지켜갈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물려주라고 부탁한 뒤 세상을 떠났다. 김사장은 90년대 옥돌집을 모체로 옥돌횟집, 옥돌부페 등을 별도로 차릴 정도로 사업영역을 확장했지만 IMF환란을 맞아 두 군데를 정리해야 했다. 현재 옥돌집은 지하와 지상 1, 2층을 합해 350개의 좌석을 갖추고 있다.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옥돌집을 대표하는 음식은 여전히 불고기다. 불고기는 1인분에 7,500원, 왕갈비는 1대에 1만5,000원이다. 불고기 값은 지난해 광우병 파동의 여파로 오히려 싸졌다. 지난 연말에는 예약취소가 줄을 이었고 "불고기는 거저 줘도 안 먹는다"는 손님도 생겨났다. 그래서 해물전골을 새 메뉴로 내놓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다시 불고기를 찾는다. 고기는 매일 새벽 마장동의 단골거래처에서 가져온다. 쇠고기는 여름철보다 겨울철에 더 맛이 있단다. 김사장의 주장인즉, 여름에는 풀을 뜯어먹고 자라기 때문에 육질에서 풀 비린내가 나지만 여물을 먹여 키우는 겨울철 소는 그런 냄새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옥돌집은 웬만한 서울사람보다 일본인에게 더 잘 알려진 식당이다. 일본의 인기 여배우이자 방송인인 구로다 후쿠미(黑田福美) 덕분이다. 그는 서울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두 권의 책을 냈는데 여기에 옥돌집이 포함된 것이다. 책은 '서울의 달인' '사랑하므니다'라는 제목으로 한일월드컵에 맞춰 우리말로 번역돼 출간되기도 했다.
서울시에 재직했던 공무원치고 옥돌집을 모르는 이는 없다. 고건 대통령권한대행도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몇 번 들렀는데 "옛날 맛이 변하지 않아 아주 맛 있게 먹고 간다"고 인사를 건네곤 했다. 왕년의 스타 신영균, 탤런트 전원주씨 등도 단골이다. 가장 나이든 고객은 100세가 넘은 할머니다. 올 때마다 불고기만 시킨다. 자녀들은 "우리 입맛에는 그저 그런데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온다"고 말한단다.
김사장 부부는 불고기 맛의 다양화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옥돌집 전통의 맛 외에 달콤한 맛, 매콤한 맛 등의 불고기를 개발해 손님의 기호에 맞춰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맛의 다양화를 시도하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전통의 맛을 고집하다 보니 젊은이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김사장은 옥돌집을 이렇게 키워준 고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5월께 개업 55주년 기념행사를 예정하고 있다.
너무 흔해도 탈이다. 귀한 줄 모르게 되니까. 우리 음식 중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불고기도 우리에겐 어느덧 그런 지천(至踐)의 대상이 됐다. "불고기 한번 실컷 먹으면 원이 없겠다." 중년이상의 한국인에겐 그런 소원을 되뇌던 기억이 새롭게 느껴질 만큼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
/도움말 김용범(소설가)
● 옥돌집 맛 비법
불고기는 갈비, 김치와 더불어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이다. 지난해 서울시가 외국인관광객 37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불고기가 1위를 차지했다. 독특한 훈향(燻香)도 갓 구어낸 고기의 맛 못지 않게 입맛을 자극한다.
옥돌집의 맛의 비법 가운데는 불고기를 무치는 양념장과 구워낸 고기를 찍어 먹는 소스도 포함돼 있다. 양념장을 만드는 과정도 독특하다. 보통 양념장은 진간장에 꿀(또는 설탕), 다진 파와 마늘, 깨소금, 후추 등을 넣어 만드는데 옥돌집은 여기에 한약재를 달인 약수를 추가한다. 이렇게 만든 양념장은 쇠고기 특유의 피비린내를 없애준다.
소스에 들어가는 양념만 해도 감초 당귀 등 한약재를 포함해 7가지나 된다. 어느 음식점이나 고기를 양념장에 무치기 전에 배즙이나 청주 등으로 버무리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효소작용이 활발해져 고기가 더욱 부드럽고 연해진다.
쇠고기를 넓게 펴서 가로 세로로 칼질을 한 다음 양념장으로 버무려서 구워 먹는 불고기는 예전에는 너비아니로 불렸다. 너비아니는 조선시대 궁중과 서울의 양반집에서 쓰던 말인데 고기를 넓게 저몄다는 뜻이다. 한국의 전통음식 중 하나인 불고기는 원래 맥적(貊炙)에서 비롯됐다. 중국의 동북지방을 의미하는 맥은 고구려를 가리키는데 맥적은 고기를 꼬챙이에 꿰어 직접 불에 구워먹는 요리다. 석쇠가 나온 뒤 고기를 꼬챙이에 꿸 필요가 없어져 지금의 불고기가 되었다는 설이 '한국요리문화사'(이성우 지음)에 기록돼 있다. 불고기 감으로는 안심이나 등심 부위가 가장 좋다고 한다. 결합조직이 적고 지방질이 조금씩 산재해 있어 맛이 좋고 육질이 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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