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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영화제 개막작 "인 더 컷"/"죽음의 공포가 느껴져도 난 이 남자랑 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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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영화제 개막작 "인 더 컷"/"죽음의 공포가 느껴져도 난 이 남자랑 자야겠어"

입력
2004.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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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흑백 활동사진이 돌아간다.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는 남녀. 남자는 꽃을 들고 여자 주위를 빙빙 돈다. 아름답게 흩날리는 꽃잎. 더 이상 로맨틱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남자가 크게 반원을 그리며 여자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 스케이트 날이 지나간 자리에는 핏자국이 선명하다. 게다가 남자의 스케이트는 여자의 다리를 싹둑 자르며 유유히 지나간다.제6회 서울여성영화제 개막작인 '인 더 컷(In The Cut)'은 시작부터 관객을 아주 불편하게 하는 영화다. 아름다운 풍경에 갑자기 웬 피? 시작만이 아니다. 영화는 내내 여성의 성적 욕망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욕망 언저리를 맴도는 죽음과 살해의 공포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멕 라이언이 처음 벗은 영화'라는 말만 듣고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자세부터 바로 잡는 게 좋을 듯 싶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여성 강사 프래니(멕 라이언). 흑인 속어를 채집하기 위해 뉴욕 뒷골목의 바에 들른 그녀는 지하실에서 오럴 섹스를 하는 남녀를 발견한다. 파란 손톱의 여자와 팔뚝에 문신을 새긴 남자. 다음날 아침, 형사 말로이(마크 러팔로)가 프래니 집에 들이닥친다. 이웃집에 살던 파란 손톱의 여자가 목이 잘린 채 살해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로이의 팔에는 어제 봤던 그 남자의 문신이 새겨져 있는 게 아닌가.

영화는 이처럼 전형적인 스릴러물의 공식을 따랐다. '네 눈에는 내가 형사로 보이니?' 혹은 '나는 네가 어제 지하실에서 뭘 봤는지 알고 있다' 식이다. 게다가 프래니의 이복 여동생 폴린(제니퍼 제이슨 리)마저 무참히 토막 살해되고, 프래니 곁에는 스토커 기질이 다분한 옛 남자친구 그래햄(케빈 베이컨)이 졸졸 따라다닌다. 한마디로 상황은 '누가 범인이게?'이다.

그러나 제인 캠피온 감독은 상황만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이미 '피아노'와 '여인의 초상'을 통해 여성심리 묘사에 관한 한 일가를 이룬 이 노련한 여성감독이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다. 독신녀인 프래니가 말로이와 치명적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도 아기자기한 로맨스가 아니라, 자신의 억눌렸던 성적욕망을 거칠게 배출하는 그런 사랑이다.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면서, 말로이와 섹스를 나누는 프래니는 도대체 누구인가.

어쩌면 감독은 이렇게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여성들이여, 당신의 성적 욕망을 옭아맸던 온갖 사회적 인습과 도덕적 편견에 저항하라! 그 욕망을 숨김없이 그리고 떳떳이 드러내라! 그 욕망의 배출 때문에 당신이 죽을지라도." 서울여성영화제 사무국이 4월30일 국내 개봉 예정인 '인 더 컷'을 부랴부랴 개막작(4월2일)으로 선정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18세 이상.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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