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1%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았지만 예상치보다는 높았다. 1인 당 국민총소득은 1만2,646달러로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수준에 달했다. 이 정도면 외환위기 직후보다 더 어렵다는 탄식은 과장이 아닌가.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통계는 그럴 수밖에 없다. 기준이 변경됐기 때문이다. 전에는 생산이나 소득에 포함되지 않았던 항목들이 대거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수치가 실상보다 좋게 나오는 착시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외환위기 이후를 '잃어버린 6년'이라고 평가했다. 한은 초청강연에서 한 말이다. 빅딜 워크아웃 민영화 등 외환위기 수습 과정에서의 문제를 꼼꼼히 따지지 않고 극약처방만 취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 이러한 급성 위기의 만성화가 현 경제위기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잃어버린…'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일본이다. 거품경제의 후유증으로 1990년대를 극심한 부진에서 보내야만 했다. 그런 일본이 얼마 전 "불황은 끝났다"고 공식 선언했다. 외국에서도 대부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제는 우리 차례인가. 최근 잇따르고 있는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보고서를 보면 그런 생각까지 든다.
■ 그루지야 공화국이 며칠 전 자국 주재 프랑스 대사인 주라비슈빌리를 외무장관으로 내정했다. 그루지야가 외국인을 외무장관에 발탁한 이유는 국내 경제위기 등을 외교를 통해 극복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 나라를 두고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치열한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어 이에 필적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은 프랑스를 방문해 시라크 대통령을 상대로 적극적인 작전을 펴기도 했다. 또 대사에게는 프랑스 국적을 유지토록 한 채 그루지야 국적을 부여했다. 대사가 원래 그루지야의 명문가 후손이지만 파격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경제인 것이다.
■ 지난 주 서울 용산의 한 주상복합아파트 분양에 몰린 청약준비금은 7조원 가까이에 달했고, 신청자는 약 25만명이나 됐다. 분양권 전매금지가 발효되기 전의 마지막 분양 때문이라고는 하나, 그 이유가 어찌 됐든 정상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청약자들의 긴 행렬 뒤에는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날로 늘어만 가는 개인 신용불량자들의 또 다른 긴 줄이 있다. 신용불량자는 2월말에 380만명을 뛰어넘어 이대로라면 400만명선 돌파도 시간문제다. 눈에 보이는 행렬은 둘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몇 개인지 알 수 없다. 우리 경제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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