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문화유산 1호'인 미술사학자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1916∼1984)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옛집(서울 성북2동 126의 20)이 전시관으로 다시 태어난다. 혜곡이 1976년 사들여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이 집은 그의 대표적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를 집필한 곳. 일대에 다세대주택이 속속 들어서면서 팔릴 위기에 처하자 2002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NT)가 매입, 1년간 수리·복원 공사 끝에 4월 10일 개소식을 가질 예정이다.내셔널트러스트는 모금 또는 기부, 증여를 통해 보존 가치가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자산을 확보해 관리·보전하는 시민운동이다. 4년 전 출범한 한국NT는 강화도 매화마름군락지 매입 등 주로 자연환경 보존에 힘써오다가 2002년 문화유산특별위원회 발족을 계기로 문화재로 눈길을 돌려 최순우 옛집을 시민 문화유산 1호로 정했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 등의 기부금과 시민 성금으로 9억 5,000여만 원의 매입 및 복원 비용을 충당했다.
최순우 옛집은 1920년대 지어진 전통 한옥으로 120평 대지에 '꼟'자형 본채와 '꼢'자형 바깥채가 마주보고 있는 튼 '?'자형이다. 혜곡이 수집한 석조물과 소나무 등 각종 나무가 배치된 뒤뜰이 특히 운치가 빼어나다. 혜곡이 직접 쓴 서재 현판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문을 닫아 걸면 이곳이 바로 깊은 산중'이라는 뜻)'에서는 집필에 몰두하던 그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고, '매죽수선재(梅竹水仙齋)' '오수당(午睡堂)' '매심사(梅心舍)' 등 단원과 추사의 글씨를 집자한 현판에서 그의 심미안을 가늠할 수 있다.
공사는 혜곡 사후 집을 증축하면서 이뤄진 변형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데 주력했다. 정양모 문화재위원장 등 지인들의 기억에 따라 복원했다. 하지만 지난해 바로 옆에 5층 다세대주택이 신축되는 등 예전 모습을 완벽하게 되찾을 수는 없었다. 한국NT 최호진 간사는 "최근 정부 차원의 근대문화유산 보존 움직임도 있으나 실질적 지원보다 제약이 큰 상황에서는 소유주들이 보존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며 "최순우 옛집은 100년도 채 되지 않은 고택이지만 혜곡 선생이 한국미술사 연구에 큰 자취를 남긴 곳인 만큼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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