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 A여고의 3학년 교실 불빛은 밤 11시가 지나도 꺼지지 않는다. 이 학교는 보충·자율학습 강제 실시를 엄격히 금지한다는 서울시교육청의 방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3학년 학생 전원에게 의무적으로 야간 자율학습을 시키고 있다.강북의 B여고도 사정이 비슷하다. 오전 7시30분에 시작하는 0교시와 오후 7교시에 수준별 보충학습을 실시하는데, 형식적으로 동의서를 받기는 했지만 사실상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교장이 아이들을 일찍 집에 보내면 지역사회에서 '3류 학교'로 낙인 찍힐까 걱정하는 것 같다"고 이 학교 3학년 담임 교사는 귀띔한다.
시교육청이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오전 8시 이전 및 오후 10시 이후 보충·자율학습을 금지하고 자율적 참여 원칙을 강조했지만 일선 학교서는 여전히 강제적인 새벽·밤 수업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학원총연합회 산하 전국보습교육협의회가 서울시내 학교를 대상으로 보충·자율학습 실시 현황을 조사한 결과 206개 일반계 고교 중 86곳이 전교생 또는 일부 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강제수업이나 새벽·밤 수업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협의회는 5∼23일 소속 학원의 학원장과 학부모, 학생을 통해 이 같은 사례를 수집했으며, 25일 강제 보충학습 실시 학교 명단을 시교육청에 통보하고 장학지도를 요구했다.
상당수 학교들은 학부모와 학생에게 형식적 동의를 받았으나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시험문제를 가르쳐준다" "야간 자율학습에 참여하지 않으면 대학 수시모집 원서를 써주지 않겠다" 등 불이익을 암시하는 방법으로 사실상 획일적인 참여를 강요했다.
최해윤 협의회 사무국장은 "일부 학교는 4월부터 보충학습을 실시할 예정이고 추가로 위반사례를 접수하고 있어 앞으로 적발학교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시교육청이 강력한 시정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학원들도 밤 10시까지로 돼 있는 교습시간을 준수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온라인 수능업체 비타에듀가 최근 수험생 2,3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시교육청 지침을 어기고 강제 자율학습 등을 한다'는 응답이 69.2%(1,616명)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충학습에 불참의사를 밝혔으나 결국 포기했다는 한 학생은 시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3학년 부장 선생님이 내 성적을 들먹이면서 어머니를 세뇌시키더라"며 "왜 이렇게까지 강제적으로 보충·자율학습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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