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직업병인지 모르지만 TV드라마를 볼 때, 나는 영상이나 배우의 연기보다는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해소되는지를 눈여겨본다.드라마의 갈등은 상이한 성격들의 대립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문학에 관한 중등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이지만 무엇 때문인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종종 무시되곤 한다. 남녀간의 로맨스를 다루는 많은 드라마에서 갈등을 만드는 것은 통신수단이다.
그 기원을 따져보면 이런 전통은 그 뿌리가 깊다. 전화가 없던 시절에는 연애담에 관한 한 편지가 유력한 갈등의 원천이었다. 편지의 농간 앞에서는 주인공들의 사랑도 맹세도 속수무책이었다. 전화의 등장으로 편지의 역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전화가 갈등을 만드는 방식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데이트를 앞두고 여자 주인공에게 갑자기 사정이 생긴다. 약속을 취소하기 위해 전화를 걸지만 남자 주인공은 그날 따라 일찍 자리를 비운다. 여자 친구에게 줄 꽃다발이나 반지를 사기 위해서.
약속 장소에서 남자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는 여자 주인공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런 날은 비가 쏟아질 확률이 터무니없이 높다. 그러나 이런 방식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터지는 휴대폰의 출현으로 불가능해졌다.
그렇다면 휴대폰은 어떻게 갈등을 만들어내는가. 주인공들은 술을 마시다가도 화장실 갈 때는 어김없이 휴대폰을 자리에 두고 간다. 주인이 자리를 비우기를 기다렸다는 듯 휴대폰은 울어대고 이런저런 이유로 합석하게 된 이성이 친절하게도 전화를 대신 받아준다. 현실에서는 자주 접하기 힘든 지나친 친절함이 부른 오해의 시작은 미비하지만 그 끝은 요란하다. 드라마를 보며 나는 가끔 생각한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 있는 화상전화 시대가 오면 우리들의 주인공들은 어떤 방식으로 오해하고 갈등하게 될 것인가를.
김 경 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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