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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국인을 위한 서양사

입력
2004.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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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문 지음 푸른역사 발행·1만3,000원

서양사를 13가지 주제로 정리한 입문서이다. 흔한 서양사 입문서 가운데서 주제를 잡아내는 안목과 함께 재미와 가독성도 돋보인다. 역사적 흐름과 작은 일화들을 적절하게 안배해 무겁지 않다. 서양사의 숲을 처음 들어가는 이라면 선뜻 길잡이로 삼을만하다.

중세 봉건제, 1·2차 세계대전 등을 다루지 않은 대신 의회제도의 발전 같은 주제를 다룬 점도 입문서로서는 개성적이다. 첫 장에서 서양 우주론부터 정리하고 있다. 전근대의 서양인이 신화적 세계관에 매달려 별들의 움직임에 따라 목욕하는 시간, 약 먹는 시간까지 정하다가 그 허구를 깨닫고 자연과 우주를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하면서 과학적 사고방식을 발전시켰다고 정리한다. 다윈의 진화론에도 한 장을 할애해 서구사에 끼친 깊은 영향을 살폈다. 저자는 진화론이 세계의 인종과 종족의 진화단계가 다르다는 것을 전제한 이데올로기로 진화, 제국주의와 인종주의의 발흥을 부추겼다고 주장하면서 진화론을 과학적 측면에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한다.

서구문명의 근간이 된 메소포타미아 및 로마 문명, 서양인의 일상을 장악한 기독교 등을 아울러 살핌으로써 한 눈에 서양사의 궤적을 훑게 한다. 가령 '서양 문명의 고향,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메소포타미아·바빌론 신화를 그리스 신화와 비교하면서 메소포타미아에서 로마에 이르는 고대 세계가 하나의 문명권이라는 논지를 편다.

대중역사서답게 인물 이야기가 역사의 무거움을 덜어준다. 루소와 동시대를 산 유리공장 직공이 읽은 여섯 권의 책 가운데 루소의 책이 절반이었는 예화, 토머스 페인의 '상식'이 출판된 후 몇 달 만에 미국 식민지에서 50만부가 팔렸는데 당시 책을 읽을 수 있는 백인 성년 남자의 수가 기껏해야 60만을 넘지 못했다는 예화로 각각 프랑스 혁명과 미국 건설의 바탕이 된 계몽사상의 확산을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의 루이 16세가 기계를 만드는 데 재주가 있어 벼룩을 잡는 조그만 대포를 직접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루이 16세는 손재주를 살려 비밀 벽장을 만들고 문서를 보관했는데, 이 작업을 도운 자물쇠공이 국민공회에 일러바침으로써 루이 16세의 타락과 부패상이 드러나고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양사의 음울한 그림자도 놓치지 않는다. 산업혁명을 다룬 장 '인류의 희망이자 재앙'에서는 10대 아이들이 주당 72시간, 심하면 하루 19시간씩 일했다는 참상을 전하고 있다. 휴식시간에조차 기계를 청소하느라 쉬지 못해 피로에 찌든 아이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선술집으로 향했다. 저자는 '역사보다 재미있는 것은 없다' 등을 쓴 군산대학교 사학과 교수.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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