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가 한창이었다. 회의실 탁자 맞은편에 앉아 프리젠테이션을 경청하던 그가 두 손을 모아 턱을 괴었다. 순간 그의 하얀색 소매가 반짝하고 빛났다. 연분홍색 보석이 박힌 세련된 은빛 프레임의 커프스버튼. 아, 남자에겐 소매끝의 드라마가 있었지. 일찍이 선명히 새겨진 이니셜로 빛나던 소매가 올 봄 무지개색 커프스버튼을 더하며 화사한 남성미를 발산하고 있다.LG그룹에서 최고 멋쟁이로 손꼽히는 LG CNS의 설재헌(41) IT사업팀장은 커프스버튼 마니아다. 전형적인 화이트칼라 직장인으로 정장을 입지만 설 팀장이 유난히 멋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재킷 가슴포켓에 꽂힌 행커치프와 하루도 거르지않고 셔츠소매를 장식하는 커프스버튼 때문이다.
해외 출장때면 그는 꼭 앤티크숍을 찾아 독특한 디자인의 앤티크 커프스버튼을 구입한다. 셔츠를 사는 기준도 커프스버튼을 달 구멍이 있는가이다.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다가 시선이 문득 소매끝에 닿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커요. 뭔가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나를 표현하고 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 생기거든요."
커프스버튼이 남성 패션 액세서리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결혼 예물로 고이 모셔지는 것도 잠깐,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대부분 장롱물림으로 잊혀지기 십상이었던 커프스버튼을 보는 관점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값비싼 예물에서 순수한 '자기만족'을 위한 패션 액세서리로 보는 것이 최근의 추세.
남성 토탈패션브랜드 케네스콜의 이주은 홍보과장은 "아직은 소수이지만 20대 후반에서 30대 중·후반의 패셔너블한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 에서 커프스버튼이 옷차림에 포인트를 주는 핵심 상품으로 부상했다"며 "정장 드레스셔츠만 아니라 캐주얼에도 찰 만큼 활용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커프스버튼의 인기는 지난해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남성 액세서리 편집매장 벨그라비아를 낸 (주)클리포드의 김충식 상무는 "불황기에는 셔츠와 타이가 화려해지지만 모두 비슷비슷해 보이기때문에 좀 더 특색있는 액세서리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서 커프스버튼이 이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한 셈이라고 평했다.
커프스버튼의 매력은 재킷소매에 살짝 가려 보일 듯 말 듯 하면서도 시계를 볼 때나 재킷을 벗었을 때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것이다. 대학생처럼 목걸이나 팔찌를 하기엔 사회적 지위나 연령대가 높고 넥타이로 만족하자니 '2%쯤 부족하다고 느끼는' 직장 남성들에게 가장 간단한 개성표현의 도구로 어필하는 이유다.
벨그라비아의 경우 커프스버튼이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 넥타이(45%) 다음으로 인기를 얻고있다. 그 다음이 벨트와 시계 순이다. 남성액세서리 편집매장인 에스티듀퐁에서도 20만∼30만원대의 고가품인 커프스버튼이 30,40대 남성들을 중심으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있다.
예물에서 패션 액세서리로 역할이 바뀌면서 유머러스한 주제와 화사한 색감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비행기나 바둑판 모양, 옷핀 모양 등 귀여운 디자인들이 대표주자들이다.
색감은 블랙& 실버 일변도에서 벗어나 노랑 분홍 하늘색 등 화사한 색상의 이미테이션 보석을 사용해 그 어느때보다 화려하다. 넥타이와 커프스버튼 색상을 같은 색으로 통일해 코디네이션하는 것도 최근 트렌드. 맞춤셔츠를 이용하는 남성들이 늘면서 이름 이니셜이 들어있는 소매끝을 좀 더 돋보이게 하는 방법으로 커프스버튼을 곁들이는 사람들도 부쩍 많아졌다.
패션리더들을 중심으로 불고있는 커프스버튼 바람은 최근의 메트로섹슈얼 트렌드에 힘입어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멋을 위해서라면 아침마다 머리세트를 마는 불편함도 기꺼이 감수하는 여성들과 달리 일반적인 남성들은 여전히 멋보다는 편리함이 우선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거스르기 어려운 법. 멋부리는 남성이 늘고있고 그들 대부분은 액세서리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럴때 커프스버튼의 유혹은 강렬하다. 은근하지만 자신만만하고 자족적인 동시에 과시적인 이 우아한 장식품의 매력을 누가 당할 것인가.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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