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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박근혜號 확실한 정체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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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박근혜號 확실한 정체성을

입력
2004.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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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야당 한나라호의 선장이 바뀌었다. 56년 헌정사상 최대 의석을 자랑하던 한나라호가 탄핵 정국이라는 예기치 않은 돌풍을 맞아 침몰하기 직전에 선장을 교체했다. 그것도 단순한 교체가 아니고 한국 정당 정치사상 39년 만에 불과 7년 전에 정치에 입문한 여성 정치인이 대표가 되었다. 더구나 1960∼70년대 개발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야당 당수가 되었으니 역시 정치란 묘한 것이다.한나라당이 위기 탈출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으로 박근혜 의원을 대표로 선출한 것은 한국정치사에 있어 이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추락일로에 있는 한나라당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는 더 이상 추락할 것도 없는 한나라당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그나마 영남권에 지지기반을 가진 박근혜 의원이라도 붙잡아 20일 남은 총선에서 당맥이라도 지키고 싶은 간절한 소망의 결과라고 본다.

이런 소망에 부응이라도 하듯 박근혜 대표의 첫 작품은 비교적 관심을 끌었다. 차떼기 정당의 부패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호화판 당사에 들어가지 않고 밤 새워 급조한 천막 당사에 출근해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사죄의 고해성사, 참회예배, 108배도 했다. 이벤트성이니 베끼기니 하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얼어붙은 당원과 지지자들의 마음을 녹이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박근혜 선장이 이끄는 한나라호가 이 정도의 각오로 사정 없이 몰아치는 태풍을 피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직도 선원들은 세차게 몰아치는 파도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서성대고 있으며, 선장 역시 준비 없이 키를 잡아 방향이 잘 안 보인다. 우선 난파 직전의 위기를 피하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선장, 선원, 승객 모두 한나라호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한나라호가 나아갈 방향을 바로 잡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한나라당은 잡탕 비빔밥처럼 정체성을 상실한 정당이었다. 음식 솜씨가 없으면 얼치기 잡탕보다는 자신 있는 단일 메뉴가 낫다. 한나라당은 보수 정당이면서도 진정한 보수의 색깔도, 그렇다고 야당다운 야당의 모습도 보여주지 못하고 큰 몸집만 유지하는 데 급급했다. 이제부터라도 보수 정당으로서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야당다운 야당이 되어야 한다.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에 요구하는 것은 대통령 중임제 개헌과 같은 권력구조 개편이 아니라 참다운 보수 정당의 모습이다.

차떼기 정당의 이미지는 천막 당사로 이전하는 것과 같은 이벤트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앞으로도 천막이 없으면 노숙을 하면서라도 깨끗한 정치,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뼈를 깎는 자세로 개혁의지를 실증적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국민소환제와 같은 정치개혁을 총선 공약으로 내걸어 언제라도 부패 정치인을 퇴출시킬 장치를 만들어야 하며, 무능하고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구시대적 정치인은 과감하게 공천에서 탈락시켜야 한다. 이런 원칙은 비례대표 공천에 철저하게 적용해야 된다.

박근혜 선장이 이끄는 한나라호의 항해 목표는 이번 총선이 아니다. 앞으로 경쟁 상대도 이번 탄핵소추 의결로 권한이 정지된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진정한 경쟁 상대는 국민이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처참한 패배를 하더라도 국민을 상대로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해 새로운 보수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국도 이제는 선진국과 같이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정당 정치가 확립되어야 하며, 이는 한나라당과 유권자의 몫이다. 그러나 한나라호가 이번 선거에 급급해 허둥댄다면 이런 몫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완전히 선체 자체가 침몰할 수 있다. 과연 한나라호가 침몰할지 아니면 기사회생하게 될지 박근혜 선장의 항해 솜씨를 지켜보자.

김 영 래 아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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