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하늘 나라로 보내는 편지/"할아버지 심청가 귓가에 맴돕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하늘 나라로 보내는 편지/"할아버지 심청가 귓가에 맴돕니다"

입력
2004.03.25 00:00
0 0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큰 손녀 인사 드립니다. 엄마를 일찍 여읜 두 손녀를 위해서 항상 걱정이 많으셨던 할아버지. 지금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어린 것들 데리고 살 일이 얼마나 막막하셨을까.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언제나 우리를 불쌍하게 바라보셨죠.할아버지께서는 겨울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오셨는데 꼭 아카시아 나무였죠. 가시에 찔려 손에 피가 맺히고 연기에 눈물을 닦으시며 꺼져가는 불을 입으로 불어 계속 방을 따뜻하게 해주셨던 할아버지. 동생과 내가 무명 솜이불을 덮고 아랫목에 누워 있으면 기침을 하면서 방이 따뜻하냐고 묻곤 하셨지요. 곧 이어 무쇠솥을 여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할아버지께서 밥을 하시나 보다 하고 기다렸어요. 보리쌀을 팍팍 씻어 쌀 몇 알 넣고 지은 밥과 한가지 반찬을 담아 방으로 들여다 주시면 우리는 그래도 얼마나 즐거웠던지요.

여름 밤이면 동천에 나가 별과 희뿌연 달빛을 보며 한 서린 목소리로 부르시던 심청가가 지금도 귓가를 맴돕니다. 심봉사가 청이를 안고 젖 동냥을 다니던 대목이면 더욱 눈물 섞인 목소리로 타령을 하셨지요. 밤마다 읽어 주시던 이야기 책과 좀 어려운 글자가 있으면 "응∼응"하다 다시 소리 내어 읽어 주실 때 셋이 함께 웃던 웃음소리도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사람은 항상 남에게 피해가 안가게 잘 해야 된다던 할아버지께서는 멀리 떨어져 사는 아버지에게 꼭 안부 편지를 쓰게 하셨지요. '아버님 전상서'하고 문장을 만들어 불러주시면 우리들은 열심히 받아 적곤 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잘 키워주신 덕분에 우리 두 손녀는 이제 어른이 되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편도, 아이들도 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그곳에서 잘 계시겠죠? 항상 주름 가득하게 함박웃음 지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이제 봄이 오면 꽃이 만발 할 것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예쁜 꽃 많이 보내드리겠습니다. 밀짚모자에 꽂고 나들이도 하시고 언제나 편안하고 걱정 없이 잘 지내시기를 빌어봅니다. 할아버지 사랑합니다.

/문경자·서울 양천구 신월2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