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몇 번이나 더 투표를 한다고…. 도통 누가 누군지 알아야 투표를 하지…."24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동 C노인정. TV를 보던 최모(68)씨는 "나라가 어수선해서 총선 투표는 꼭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이번에는 후보 합동 연설회가 없어져서 도대체 뭘 보고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함께 있던 김모(71)씨는 "요즘은 대부분 인터넷으로 선거운동을 한다는 데,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아예 투표하지 말라는 얘기 아니냐"고 목청을 높였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17대 총선에서 노인들이 소외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합동연설회, 정당연설회가 폐지되고 인터넷 홈페이지, 이메일 등을 통한 온라인 선거운동이 대폭 강화됐다. 이에 따라 젊은층에 비해 정보화 수준이 떨어지는 고령의 유권자들을 위한 선거관련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선거운동은 첨단화 하고 있지만 노인층은 오히려 정보의 사각지대로 내몰려 국민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양로원, 복지관 등 노인단체 관계자들은 "연설회 폐지로 60세 이상 유권자들이 지역 후보들을 제대로 파악할 방법이 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성동종합복지관의 이모(63)씨는 "돈 안 들이는 깨끗한 선거도 좋지만 후보들의 자질을 비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는 보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장모(66·송파구 가락동)씨는 "식사 한 끼 대접 받아도 50배의 과태료를 무는 판에 연설회장에서의 금품 살포가 가능하겠느냐"며 연설회 폐지 조치를 성토했다.
노인들이 인터넷으로 선거 정보를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 이모(68·여)씨는 "복지관에서 인터넷 사용법을 배웠지만 뒤돌아서면 잊어버린다"며 "그냥 아들이 찍으라는 후보를 선택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구 명동의 노인대학인 '덕명의숙' 강 민(47)교장은 "인터넷을 가르쳐도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아는 노인들은 거의 없다"며 "오프라인 선거운동 부재로 고령층이 인물 대신 당만 보고 투표하려는 성향이 커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노인문제 전문가들은 현 선거제도가 고령화 사회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 김덕원 사무국장은 "국내 60세 이상 노인은 약 550만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5분의 1에 육박한다"며 "고령 유권자들의 높은 투표율을 감안할 때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합리적인 선거운동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