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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부삼천지교 조재현/"망가졌다구요? 그래도 자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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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부삼천지교 조재현/"망가졌다구요? 그래도 자신있습니다"

입력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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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선택하는 것은 물론 배우 마음이다. 그래서 망가지든, 오버하든 관객으로서는 크게 신경 쓸 바 아니다. 무모한 연기 변신이려니, 아니면 주위의 강요거니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조재현(40)은 다르다. 영화 '나쁜 남자'와 드라마 '피아노'의 그를 기억하는 많은 팬들은 말한다. "조재현이 요즘 왜 이럴까?"영화 '맹부삼천지교'(감독 김지영)의 개봉(26일)을 앞두고 서울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헐렁한 티셔츠에 여전히 강렬한 눈빛. 불혹의 나이건만 20대 청년처럼 풋풋하고 싱싱하다. 지난달 20일 개봉한 '목포는 항구다'의 덜 떨어진 강력계 형사, 아들을 서울대에 보내기 위해 목숨까지 건 '맹부삼천지교'의 학부형 이미지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조재현씨의 최근 코미디 2편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골수 팬들로부터 유사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조재현의 아우라(본성과 힘)가 무너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요. 그러나 저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도 나왔고, '교도소 월드컵'에도 나왔습니다. 도대체 배우의 필모그래피(출연 작품)니 아우라니 하는 말들이 한국에 언제 상륙했나요? '나쁜 남자'의 조재현도 저고, '맹부…'의 조재현도 접니다. 중요한 것은 배우 안에 영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 안에 배우가 있다는 겁니다."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금세 말이 터졌다. "물론 '목포…'에서는 내가 보기에도 낯간지러운 연기를 많이 했죠. 조폭에 잠입해 땅 속에 묻히고 종에도 얻어맞고. '맹부…'도 세련되게 포장을 못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맹부…'는 시사회가 끝난 후 자신 있게 일어난 몇 안 되는 작품입니다. 이땅에서 살아가는 같은 아버지로서의 공감이랄까요."

그러더니 화살을 평론가와 기자에게 돌린다. 그의 쓴 소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영화가 유치하다, 저급하다'고 말하는 것은 나쁜 평이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봐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나쁜 평이다. 김기덕 감독이 국내에서 욕을 먹고 있을 때, 외국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그가 무섭다.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배우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반찬이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식판을 깨서야 되겠는가.

"흔히 저를 '김기덕 사단'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잘못입니다. 김 감독 작품에 자주 출연했던 것은 저예산영화에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시 나의 에너지를 끄집어낼 감독은 그 사람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조재현은 저예산영화 배우'라는 낙인을 벗고자 지난해 대작 '청풍명월'을 선택한 것이고, 가벼운 영화를 해보고 싶어 '목포는 항구다'를 선택한 것 뿐입니다. 작품 선택 기준은 매 순간 다른 법이죠."

그러면 '맹부삼천지교'는? 사채를 얻어 서울 강남구 대치동으로 이사를 갔으나 앞집에 조폭이 산다는 설정은 재미있지만, 이를 힘차게 밀고 나가는 힘은 분명히 떨어지는 영화다. 조재현이 맡은 맹만수 역도 아들의 일탈에 좌절하는 홀 아버지가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어딘지 공허하다.

이에 대해 그는 "학부형으로서 내가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 선택한 영화일 뿐"이라고 잘랐다. "제 아들이 고1입니다. 시사회가 열린 날 배우가 된 후 처음으로 아들놈 데리고 극장에 갔죠. 그 동안 깡패나 개 장수 같은 배역만 맡아 아들에게 자신 있게 보여줄 만한 영화가 없었거든요. 저도 쇼트트랙 선수인 아들놈을 옆에서 믿고 밀어주는 평범한 학부형일 뿐입니다."

학부형 얘기가 나온 김에 불혹이 된 느낌을 물었다. "인정할 수 없다. 내가 나이 60이 돼도 40은 인정할 수 없다. 안정적이고, 안주하고, 적당히 가식적이고, 편한 것만 추구하는 40대를 난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목포…'가 관객 180만명을 돌파하면 스태프 전원에게 금 한 돈씩 선물하기로 했다고 좋아한다. 영원히 젊고, 사람이 좋아 쉽게 남의 어려움을 뿌리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인간 조재현. 그러나 다음 작품에서는 골수 팬들도 좋아할, 거칠고 강렬하며 그래서 두렵고 무서운 '배우' 조재현을 만날 수 있기를.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 "맹부삼천지교" 어떤 영화

오로지 고3 아들 맹사성(이준)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동태장수 맹만수(조재현). 아들을 서울대에 보내기 위해 고금리 사채까지 얻어 대치동으로 이사를 간다. 아파트 앞집에 모의고사 전국 수석을 하는 천재가 산다는 소식에 좋아했던 것도 잠시. 그 집에 조폭 삼촌 최강두(손창민)가 산다. 맹만수가 물었다. "삼촌이면 금방 가실 거죠?" 최강두가 껄렁하게 답한다. "아닌데, 오래 있을 낀데."

'맹부삼천지교'(감독 김지영·사진)는 자식 교육을 위해 이사를 세 번이나 한 맹부(孟父)와, 이런 맹부를 본의 아니게 방해하는 조폭 우두머리의 이야기다. 맹부의 지상과제는 '아들 서울대 보내기'. 이 과제 앞에서 앞집 조폭의 고성방가와 음주가무는 반드시 처단해야 할 악이다.

그러나 이런 조폭보다 맹부를 더 괴롭힌 것은 강북에서 전교 1등을 달리던 아들의 탈선. '맹부…'가 흔한 3류 건달과 단순 맹목의 학부형 코미디에서 뭔가 감동을 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맹부…'는 뭐가 빠져도 단단히 빠진 영화다. 조카 집에 얹혀사는 조폭 일당(손창민 최준용 김뢰하 도기석)의 단순 무식한 일상이 너무 반복적이다. 경상도 사투리라는 익숙한 설정과 껄렁대는 어깨들의 오버 액션에 식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최강두가 부하들을 눕히고 구부리고 해서 '인간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장면도 그다지 재미있지가 않다.

요즘 학부형의 심리와 과도한 교육열을 역설적으로 비판한 맹만수의 존재감도 설득력이 약하다. 지하주차장에서 최강두와 '맞짱을 뜨는' 맹만수는 멋있지만, 일개 동태장수에 얻어맞고 숨을 헐떡거릴 조폭이 과연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이 영화가 한번쯤 볼만한 것은, 그렇게나 자신의 못 배우고 가난한 설움을 아들을 통해 보상 받으려 했던 아버지의 좌절과 용서, 그리고 부자간의 화해 때문이다. 그 아버지가 다름아닌 우리들의 아버지가 아니던가. 15세 이상. 26일 개봉.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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