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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죽어서도 불명예스러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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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죽어서도 불명예스러운 이름

입력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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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동네에 '선거 술 먹고 죽은 할머니' 한 분이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라 나는 그 할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주 예전 어느 해 선거에 공술이 그렇게 뿌려졌으며, 그 공술을 얻어먹고 탈이 나 돌아가셨다고 했다.그런데 그때부터 그 집은 동네에서 '선거 술 먹고 죽은 할머니 집'으로 불리기 시작해 아직도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동네에서 돌아가며 모내기를 하던 시절, 그 집 모내기를 하는 날이면 사람들은 '오늘은 선거 술 먹고 죽은 할머니 집 모내는 날'이라고 했고, 길 가의 그 집 논을 말할 때에도 '선거 술 먹고 죽은 할머니 집 논'이라고 말했다. 또 그 집 아들이거나 손주 중 누군가를 설명할 때에도 '선거 술 먹고 죽은 할머니 집 큰 손주' 하는 식으로 말했다.

어떤 악의를 담아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는 게 서로 설명하기도 쉽고, 알아듣기도 쉽기 때문이다. 나처럼 그 할머니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그렇게 설명해야지만 그 집 얘긴지 제대로 알아듣는 것이다.

얼굴은 모르지만 몇 년에 한번씩 선거가 가까워지면 생각나는 할머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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