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여, 거리로 나가라!" 이른바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분이 부채질한다. "노자(老子)는 말했다. 젊은이는 약하고 늙은이는 강하다. 약함은 삶의 무리요, 강함은 죽음의 무리다(柔弱者 生之徒 堅强者 死之徒). 젊음은 나이를 모른다. 오로지 강함을 자처하는 자들만이 늙은이요, 그들만이 죽어가고 있는 자들이다!"정말 노자가 이렇게 말했나? 지하철이나 버스의 노약자석을 보노라면 '젊은이는 약하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젊은이와 늙은이를 무엇으로 구분하나. 1948년생이나 1946년생은 어디에 끼나. 1940년생은 어떤가. 죽어가고 있는 자들이 늙은이인가.
일찍이 프랭클린은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다." 케인스는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렇다면 이른바 대왕생(大往生)은 인간의 패배인가 승리인가.
도덕경 76장은 가르친다. '단단하고 딱딱한 것은 죽은 것들의 본성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산 것들의 본질이다.' 노자가 물에 비유한 유약(柔弱)은 도덕경의 근본사상인 무위자연의 이치와 맥을 같이 한다. '강대한 것은 아래에 들고 유약한 것은 위에 든다'고 했다. 이를테면 나무의 줄기와 가지에 비유할 수 있지 않나.
자연 생태계에선 경쟁이 치열하지만 거기엔 오기의 대통령도 없고 막강한 국회도 없다. 개나리는 지긋이 봄을 기다리다가 꽃부터 피운다. 철쭉은 진달래와 다투지 않고 잎과 함께 꽃을 피운다. 대추나무는 봄이 무르익도록 죽은 듯이 기다린다. 이렇듯 대립과 경쟁을 초월하여 자생적 질서에 따라 다양성의 조화를 이루는 게 무위자연의 유약한 생태계다.
유약은 생각의 유연성과도 맥을 같이 한다. 사고의 개방성을 이른다. "자기가 알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정보를 차단해 버린다." 요로타케시는 이를 '바보의 벽'이라 했다. 찬반 대립에 고착된 생각의 장벽부터 헐어내야 유약한 사회가 된다. 함석헌의 말처럼 생각이 가난하지 않은 사회라야 물 흐르듯 진화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영화가 발전했다면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의 장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때문이 아니겠는가. 인간 세상의 진화과정은 장벽을 헐어내면서 자유를 향해 나가는 과정이다. 젊은이들이여! 나가려거든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해맑은 태양을 향해 나가라. 음습한 촛불의 가스와 검댕은 맑은 공기를 더럽히고 시야를 흐리게 할 뿐이다.
조 영 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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