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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전용관]몸부림보단 고독이 눈에 띈 "고독이 몸부림 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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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전용관]몸부림보단 고독이 눈에 띈 "고독이 몸부림 칠 때"

입력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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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말에 의하면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로 올해 베를린영화제를 찾았던 잭 니콜슨(67)이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로버트 데 니로? 알 파치노? 내 나이 또래에 로맨스 영화 찍는 사람은 나밖엔 없다." 스물 여섯 살의 어린 헬렌 헌트와 공연하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로 오스카를 거머쥐었을 때 나이가 환갑. '어바웃 슈미트'에서 캐시 베이츠와 함께 목욕 신을 찍었을 땐 66세. '사랑할 때…'에선 35세 연하 배우와 로맨스. 기염을 토할 만하다.할리우드 노인 배우들의 나이를 잊은 활약 앞에 괜히 기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부분 1930, 40년대에 태어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주요 출연진 평균 연령이 60세에 가까운 '고독이 몸부림 칠 때'(사진)는 팽팽한 20대들의 로맨스도 극장가에서 퍽퍽 나가떨어지는 판에 꽤 용기 있는 기획. 물건리 마을 노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이 영화는, '까치가 울면' 같은 TV의 농촌 프로그램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노인들이 지닌 은밀한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업적으로 금기시되었던 '노인의 욕망'이 최근 한국영화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건, 사회학적으로 보면 고령화 사회에 대한 반영이겠지만, 영화적으로 보면 로맨스 영화의 소재 확장이다. 두 번이나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던 '죽어도 좋아'는 선정주의의 혐의 또한 받았던 영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양식을 결합해 박치규 이순예 부부의 젊은이 못지않은 성 생활과 깊은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데, 이 영화가 던진 충격이라면 바로 그 '있는 그대로'가 주는 힘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항상 근사한 남녀들의 베드 신만을 만나왔던 젊은 관객들이 무의식적으로 가졌던 '과연 노인들도 섹스를 할까'라는 생각은 이 영화에서 여지없이 부서진다. 그들은 섹스를, 어떨 땐 하루에 두 번씩, 그것도 아주 하드코어(?)한 방식으로 나눈다. 모든 노인들이 이렇게 살아간다고는 말 못하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노인들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할 얘기는 충분히 다 했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다.

'바람난 가족'의 윤여정은 환갑 나이에 처음으로 오르가슴이라는 걸 느끼게 된 여자다. 남편은 간암으로 병원에 누워 있는데,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 바람 피우고 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분명히 파격적인 캐릭터. 하지만 그 노인의 행동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건, "인생은 60부터" 식의 진부한 경구 때문이 아니라, 욕구에 대한 솔직한 태도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 섹스 앞에서 움찔하는 사람은 이미 폐경기를 맞이한 할머니가 아니라 한참 왕성해야 할 30대 부부다.

여기서 '고독이 몸부림칠 때'는 파격보다는 애틋함을, 섹스보다는 로맨스를(물론 양택조의 은근한 유혹도 있지만) 택한다. 이 영화의 고독한 사람들은 욕정에 시달린다기보다는 관계에 굶주렸다. 그런데 그 관계라는 것이, 관객의 예상과는 조금씩 빗나간다. 그런데 그들은 '죽어도 좋아'와 '바람난 가족'의 그들에 비하면 너무 자제하는 것 아닐까? 사실, 이전의 노인들이 너무 '쎈' 탓도 있긴 하다.

/김형석·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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