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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대장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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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대장금

입력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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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막을 내리는 MBC '대장금'에서 한때 장금의 연인 민정호(지진희)보다 더 중요한 '남자 주인공'이라는 농담조의 찬사까지 받았던 강덕구(임현식)는 참 재미있는 인물이다. 그는 그저 웃기는 아저씨 같지만, 사실 번듯한 직장에 나름의 수완도 있는 남자다. 하지만 그는 거의 모든 경우에 아내(금보라)가 하자는 대로 할만큼 아내에게 쥐어 산다. 이는 평범한 공처가의 모습일수도 있지만, 사실 그는 '조선조의 가부장'이다. 그런데도 그가 아내의 튀는 행동에 제동을 걸지 않은 것은, 자기보다 생활력이 좋은 아내에게 스스로 집안의 주도권을 넘겨준 것 아니었을까.이건 '대장금'의 속 좋은 남자들의 공통점이다. 민정호나 내의원의 신익필(박은수)이 장금을 공적으로 도와준 것은 장금에 대한 사감보다는 자신들의 소신 때문이다. 민정호가 직위를 걸고 장금을 도운 것이나, 신익필이 장금을 위해 내의원 수장에서 물러나려 한 것은 모두 장금의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중종(임호)을 보라. 그는 절대권력자이지만, 장금의 뜻을 생각해 그녀를 후궁으로 삼지 않는다. 그들은 그 당시의 다른 남자들이 보기엔 '탄핵' 당할 사람들(민정호는 정말로 탄핵 당할 뻔했다)이지만, 지금의 시각에서는 가장 상식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대장금'이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 아니었을까. 조선시대의 궁녀와 내의녀에게도 자신의 삶이 있을 거라는 상식, 능력 있는 사람은 여자라도 어울리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상식. 홍시에서 홍시 맛이 나는 것처럼 현대 드라마엔 지금의 가치관과 스타일을 담을 수 있다는 상식. '대장금'은 사극 안에 전문직여성의 이야기를 다뤘고, 추리와 멜로를 섞었으며, 때론 정치드라마가 되기도 했다. 사극을 현대의 가치관으로 소화하면서 '대장금'은 우리 음식과 궁녀들 옷의 아름다움을 시청자에게 알려주었고, 사극에 성악이나 기타 연주가 어울릴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장금'의 사극에 대한 상식적이면서도 파격적인 접근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사극 특유의 서사성을 잃으면서 마지막 한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면서 궁녀와 궁궐 속의 삶에 대한 진지한 접근으로 이어간 한상궁(양미경)의 죽음까지의 이야기에 비해, 그 이후는 그렇지 못했다. 연장방영이 무산되면서 새로 등장한 인물들은 이전처럼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기 힘들었고, 그러면서 인간의 삶에 대한 풍부한 시각을 담지 못했다.

만약 장금의 의원시절 이야기가 좀더 여유 있게 진행되었다면, '대장금'은 궁궐 밖 평민들의 이야기도 보여 줄 수 있지 않았을까. 과거의 백성들도 모두 똑같은 생명을 가졌다는 현대의 상식이자 과거의 파격은 '대장금' 이후 완성될 수 있을까.

파격은 모든 것을 엎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건전하고 열린 '지금'의 상식에서 나온다. 중종 시대의 '불가능을 모르던 여자' 장금이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그런 것 아니었을까.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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