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철만 되면 한반도를 찾아와 기승을 부리는 불청객, 황사(黃砂). 각종 호흡기 질환과 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천덕꾸러기다. 하지만 최근 과학계가 새로운 시각으로 황사에 접근하고 있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를 식혀줄 대안으로 보는 것이다.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황사, 그 세계로 들어가 보자.죽음의 땅 타클라마칸의 대이동
타클라마칸 사막의 바람은 살인적이다. 모든 풍경을 하룻밤 사이에 바꿔놓는다. 높이 100m 안팎의 크고 작은 모래언덕(砂丘)을 눈 깜짝할 사이에 만들어냈다가 없애버리거나 수m씩 이동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사막을 건너가려는 사람들에게 강풍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오죽하면 타클라마칸이란 말의 뜻이 위구르어로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는 땅'일까.
이 죽음의 땅 타클라마칸의 냄새를 4,000㎞ 이상 떨어진 한국에서도 맡을 수 있다. 봄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황사를 통해서다. 타클라마칸에서 발원한 모래 먼지는 강한 바람을 타고 한반도까지 날아온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도달하기도 한다.
황사가 타클라마칸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북부의 고비나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고원 등 사막이 있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생겨난다. 겨우내 얼어있던 사막의 토양은 봄기운에 녹으면서 잘게 부서지고 푸석푸석해져 모래먼지 상태로 바뀐다. 이 모래먼지는 저기압 후면의 강한 상승기류를 타고 공기 중으로 올라가 두텁고도 안정된 먼치층을 형성한다. 이것이 강한 편서풍을 타고 동쪽으로 이동해 와 우리 나라를 비롯해 미국에까지 피해를 입히게 된다. 이것이 황사 발생의 메커니즘이다.
황사 입자는 0.1㎛ (1㎛는 100만분의 1m)에서 수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람의 머리카락 굵기가 보통 10㎛인 점을 감안하면 고운 황사의 입자는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늘고 거친 황사는 사람 머리카락보다 몇 배 굵다. 황사는 대개 고도 1∼2㎞대와 고도 4∼5㎞대의 2개 층을 형성해 이동한다. 낮은 층에 형성된 황사는 비교적 입자가 굵은 모래로 멀리 날아가지 못한다. 반면 높은 층에 형성된 황사는 고운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어 수천㎞에서 수만㎞까지 이동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피해를 입히는 황사는 대부분 2∼5㎛크기. 10㎛를 넘어서는 모래먼지들은 2시간 이내에 지상으로 떨어져 버린다. 따라서 먼 곳에서 발생한 황사일수록 우리 나라에 피해를 덜 입힌다. 2002년도 황사는 한국과 가까운 네이멍구 고원지대와 베이징 북서쪽 훈센다크 사막지역에서 발원한 것으로, 굵은 입자를 동반해 사상 최대의 피해를 입혔다.
황사는 실리콘, 알루미늄, 칼륨, 칼슘 등과 미세 부유물질로 구성돼 있다. 이것들이 급속한 산업화로 오염된 중국 상공을 통과하면서 오염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황산화물(SO), 질소산화물(NO) 등을 생성한다.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은 흡연자들의 만성 기관지염을 악화시키고, 면역기능이 약한 노인과 영아에게는 호흡기 감염질환을 유발하며 천식환자나 폐질환 환자 등의 증세를 악화시킨다.
최근 들어서는 황사에서 다이옥신이나 유기염소 살충제 등 미량의 독성물질도 발견되고 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와 기상연구소, 국립환경연구원,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등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제주도 고산대기관측소의 수년간 관측 데이터에서도 황사 내 독성물질의 함유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갈색 구름 만들어 지구 냉각
황사가 나쁜 영향만 미치는 것은 아니다. 황사에 포함돼 있는 탄산칼슘 성분은 토양을 중화하는 역할을 한다. 농약의 과다 사용으로 산성화된 땅을 황사의 탄산칼슘 성분이 중화해 주는 것이다. 또 적조 발생억제에도 황사가 효능을 갖고 있다는 보고가 발표된 적도 있다.
최근 들어서는 황사가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는 효과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아직 과학적으로 완전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유엔환경계획(UNEP)이나 미국 해양대기청(NOAA) 등 의 연구를 통해 황사가 더워진 지구를 식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황사를 포함한 대기중의 액체 및 고체 입자(에어로졸·aerosol)는 태양빛을 사방으로 산란시킨다. 에어로졸 속의 탄소 성분은 햇빛 자체를 흡수한다. 따라서 대기 중에 먼지 등의 입자 많을수록 지표면에 도달하는 햇빛의 세기는 줄어드는 것이다. 또한 대기중의 오염된 먼지는 갈색 구름(brown cloud)을 만들어낸다. 이 구름은 햇빛을 반사하고 지구 표면의 적외선을 흡수해 결과적으로 지구를 냉각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과학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가장 공신력 있는 국제 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이산화탄소(CO2)나 메탄가스, 수증기, 프레온 가스 등의 물질들은 지구 온난화에 +2.4의 영향을 미치는 반면, 에어로졸은 ―2의 효과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산화탄소 등이 지구를 2.4 만큼 데운다면 황사 등의 에어로졸은 2만큼 지구를 냉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좀더 장기적으로 연구를 해봐야겠지만 황사를 포함한 에어로졸은 온실기체에 의한 지구 온난화 효과를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그렇게 되면 지구 온난화 문제도 알려진 만큼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는 과학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윤 순 창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미 오레곤주립대 이학박사
환경부 사전환경성검토
및 환경영향평가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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