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대한적십자사는 자신들이 공급한 혈액을 수혈받은 사람 가운데 9명이 B·C형 간염에 감염된 사실을 인정했다. 적십자사가 스스로 잘못을 찾아내 시인한 것은 일단 평가해줄만 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수혈로 에이즈와 말라리아 등에 감염되는 사고가 잇따랐는데도 아직도 혈액관리체계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은 문제다. 전문가들은 "적십자사가 국민이 내는 회비로 운영되는데다 경쟁자도 없다보니 무사안일에 빠져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제약회사 임원은 "만일 약품으로 인해 간염환자가 단 한 명이라도 생겼다면 그 약을 제조한 회사는 곧바로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적십자사의 이번 '고백'은 대한수혈학회 등 관련 의료계가 우리나라의 수혈에 의한 간염 감염률이 일본보다 50배, 미국보다는 60배나 높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렇게 대형 수혈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는 것이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유사한 사고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적십자사측은 "간염 외에 다른 질환에 감염된 사례는 전혀 없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이번 일로 국민에게 헌혈을 호소할 명분이 크게 퇴색됐다. 혈액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헌혈자가 급감하는 바람에 이미 수혈용 혈액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악성 빈혈 환자 등을 위한 적혈구 농축액은 전국 16개 혈액원에서 7일분 정도를 보관해야 원활히 공급할 수 있는데, 현재 보관량은 이틀 치에 불과하다.
특히 'O형 적혈구 농축액'의 재고량은 하루 평균 필요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 심야 시간에 TV에서 그 동안 보기 힘들었던 혈액을 급히 구한다는 자막까지 등장했다.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적십자사는 "혈액은 인공적으로 대체품을 만들 수 없으므로 국민들의 적극적인 헌혈 참여 없이는 국민건강을 보장하기 힘든다"고 말한다.
국민이 믿고 '사랑의 헌혈'에 동참하도록 하려면 적십자사의 뼈를 깎는 자성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