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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선/"환락타운" 오명벗는 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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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곳에선/"환락타운" 오명벗는 양평

입력
2004.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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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의 경치가 너무 좋아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적이 있었지요. 헌데 아이들이 강가에 목욕탕 표시(숙박업소)가 왜 이리 많냐고 물어 몇 년 동안은 오고 싶어도 이쪽으로 못 왔어요." "늦은 감이 있지만 강변에 가족과 함께 음악회도 감상하고 그림도 볼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고 있어 흐뭇하네요." 19일 오후 경기 양평군 강하면 전수리. 남한강변을 따라 광주로 뻗어있는 88번 국도 도로변에 자리한 문화체험 공간 '토마토 밸리'가 눈에 들어온다. 남한강의 풍광이 앞마당처럼 펼쳐지는 탁 트인 창가에서 도자기를 빚고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중년 남녀들의 모습이 다정해 보인다. 차 번호판이 검은 차단막으로 가려져 있고 강변으로 향한 객실창엔 우중충한 커튼이 드리워진 인근 모텔과는 대조적이다.이곳은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모텔과 칸막이가 달린 식당으로 쓰였던 곳. 그러나 불과 반 년도 안돼 가족형 펜션, 칸막이가 없는 가족식당, 도자기 체험실, 야외음악장 등이 갖춰진 문화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러브호텔 벨트에서 문화 벨트로

양평이 문화의 거리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모텔을 가족형 펜션과 문화체험 공간으로 바꿔놓은 토마토 밸리는 '러브호텔 벨트'라는 오명에 찌들었던 양평의 변화를 상징한다. 먹고 마시고 일탈하는 공간들 틈에서 갤러리, 자동차극장, 전시장, 복합문화공간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대신 러브호텔들은 쇠락의 징조가 뚜렷하다.

양평에 문화의 내음이 풍겨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강하면 병산리에 '초막요 미술관'이 들어서면서부터. '초막요 미술관'은 서예, 한국화, 도자기 공예전시관으로 출발, 올해 '전원 스튜디오i'로 이름을 바꿨다.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짚공예, 악기제작, 타일조각공예 등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야외 공연장에서는 명창 안숙선,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의 공연도 펼쳐진다.

아프리카 짐바브웨 돌조각(쇼나조각) 전문전시관인 '아지오 갤러리'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해 다음달부터는 음악회, 연주회, 각종 미술 강습회가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99년 개관한 강하면 운심리의 '바탕골 예술관'도 발레공연, 댄스 강연, 도자기 제작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문화 명소로 자리잡았다.

개관을 앞둔 전시관도 상당수다. 99년 착공한 6,000평 규모의 양평미술관은 입구에 위치한 모텔의 철거 보상이 이뤄지는 대로 마무리 공사에 들어간다. 양평미술관 인근 1,400평 규모의 '닥터박 양평미술관'도 10월 완공을 기다리고 있고 인근의 '수석(水石)공원' 도 조만간 착공될 예정이다.

도예가 우희숙(42)씨는 "유럽 어느나라 강변에도 뒤지지 않는 경관을 갖추고 있는데도 남한강은 '모텔'이 주제가 된 척박한 공간이었다"며 "라인강과 도나우강가를 고성(古城) 중심 테마로 꾸민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처럼 문화를 테마로 한 강변이 되도록 정부의 관심과 일반인들의 의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팔 걷어 붙힌 양평군

90년대말 집중적으로 모텔과 러브호텔 허가를 내주어 지탄을 받았던 양평군도 양평을 '문화벨트'로 만드는 데 발벗고 나서고 있다. 미술관, 갤러리들이 주로 개인독지가, 문화예술가들의 후원으로 운영돼온 반면 군은 공원, 테마마을, 휴양시설 조성 등에 집중하고 있다.

1,700석 규모의 용문산 야외 공연장은 '양평군의 하드웨어 제공, 민의 콘텐츠 제공' 이라는 성공적인 관·민합작사례로 꼽힌다. 2000년 당시 군은 주민행사를 위해서 이곳을 조성했고, 2002년부터는 공연기획사를 유치해 30∼40대 가족관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을 펼치고 있다. 특히 숙박과 연계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어 지난해에는 공연당 1,200명 이상의 관객이 찾을 정도로 정착됐다.

군은 문화마을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 양평군이 등장하는 점에 착안해 '황순원 문학촌―양평 소나기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소년이 소녀를 업고 개울을 건너고 조약돌 줍기를 했던 소설 장면을 체험하며 즐길 수 있도록 사람을 업고 건널 수 있는 1950년대식 자갈 깔린 개울과 갈대숲, 징검다리, 외나무 다리, 섶다리 등이 복원된다.

이밖에 50, 60년대 과자와 제품을 팔고 교복시대 교실을 재현한 '유년시절 체험관'을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남한강을 끼고 있는 88번 국도, 6번 국도변을 '미술의 거리'로 만드는 데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양평군은 상징적 의미로 모텔을 인수, 객실 하나하나를 고쳐 개별 작가의 전시관으로 활용하는 '화가의 모텔'(가칭)도 계획중이다.

양평군 김강윤(45) 문화정책연구관은 "10여년 전부터 양평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해온 300여명의 미술인들이 양평을 문화벨트로 바꾸는 데 큰 동력이 됐다"며 "일산, 미사리처럼 주제가 없는 단순 카페촌이 아니라 문화마을 보존, 공연장 건립 지원, 미술관 건립 등을 통해 문화적 테마가 살아있는 양평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양평=이왕구기자 fab4@hk.co.kr

■郡 "외부 지원 절실"

"외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꼭 문화벨트로 만들겠습니다."

경기 양평군 강상면과 강하면에서 영업중인 호텔급 숙박시설을 포함한 러브호텔은 모두 49개. 양평군은 러브호텔 벨트의 오명을 벗고 '문화벨트'로 만들기 위해 모텔 등 퇴폐 숙박업소의 철폐와 가족형 펜션 전환, 문화시설 유치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양평군의 계획은 현실화하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이곳 업주들이 영세한 데다 이들을 지원한 예산도 태부족이기 때문이다.

또 러브호텔 주변에 산책로를 조성하고 조명등을 설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러브호텔의 자연스런 퇴출을 유도하고 있지만, 업주들의 반발이 커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지상 8층, 객실 38개의 대형 러브호텔을 운영중인 A씨는 "최근 홍천, 춘천 쪽으로 새 도로들이 뚫리면서 남한강변 쪽에 머무는 손님들이 대폭 줄었다"며 "우후죽순으로 러브호텔 허가 내주었던 양평군이 이제 와서 강제로 퇴출시킬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텔을 펜션으로 바꿔 수익을 낼 수 있을지도 아직은 회의적이다. 복합문화체험관 인근에서 러브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안모(52)씨는 "모텔을 펜션으로 바꾸려면 방에 조리대를 설치해야 하는 등 1, 2억원 가량이 든다"며 "먹거리, 놀거리가 없어 가족단위 고객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 펜션이 수익을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현실성 없는 문화거리 조성 등을 추진하지 말고 차라리 놀이공원이나 스키장 등을 유치한다면 사비를 들여서라도 펜션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부 지원 없이 개인 주도로 문화전시관, 갤러리 등을 운영하는 한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도 걸림돌이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문화전시관인 토마토밸리의 경우 주말 10실인 펜션에서만 수익이 생겨 매달 1,000만원 이상의 적자가 쌓이고 있는 상태다. 91년 들어선 '초막요 미술관'도 경영난으로 96년 문을 닫은 후 2000년 재개관했으나 역시 재정문제로 1년도 안돼 셔터를 내렸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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