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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입시 아닌 인생을 위한 진정한 권장도서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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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입시 아닌 인생을 위한 진정한 권장도서가 필요

입력
2004.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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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피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이승수 옮김. 서교출판사

● 세상의 모든 딸들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이선희 옮김

홍익출판사

중학생의 독서생활 중 가장 큰 특징은 독서의 양극화 현상이다. 많이 읽는 아이는 많이 읽고, 안 읽는 아이는 아주 책을 멀리 하게 되는 분기점이 중학교 때라고 한다. 또 어른들이 읽히고 싶은 책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 사이에 간격이 커지는 것도 이 무렵이다. 소위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어른들이 권하는 책에 재미를 못 느끼는 아이들은 만화, 게임, 인터넷 소설, 판타지 소설에 탐닉한다.

그 간격을 좁혀보고자 요즘에는 어른의 선택에 아이들의 반응도 반영하여 그들의 눈높이와 정서에 맞는 책을 권장도서목록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좋은 책을 찾아 읽으려는 아이나 부모가 아니라면, 그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것은 각 학교에서 제공하는 권장도서목록일 것이다. 학교와 교사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한 중학교에서 신입생에게 나누어준 권장도서목록에는 한국문학과 외국문학, 역사, 과학, 예술, 학습 및 성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 60여권이 두서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문학에서는 앞으로의 대학 입시를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김동인 김유정 채만식 등의 단편집과 심훈의 '상록수'와 안수길의 '북간도'가 들어있었고, '삼국지' '죄와 벌' '레 미제라블' 같은 작품도 빠지지 않았다. 이런 책들은 초등학교 때까지 재미있는 이야기책을 읽던 아이들에게는 학습의 연장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갑자기 익숙하지 않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책의 내용과 표현이 암호처럼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치밀한 심리묘사와 당시의 시대상황을 기초로 한 서사가 아니고는 참 맛을 알 수 없는 대작을 자칫 의무감에서 살은 다 도려내고 뼈만 남은 축약본을 읽을 수도 있어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책을 목록만 주고 혼자 읽으라고 내팽개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물론 '어린 왕자'와 이탈리아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가톨릭과 공산주의의 대립, 냉전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며 신부와 예수, 우직한 읍장 사이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린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나 석기시대 시베리아에서 남성에 비해 육체적 힘의 절대하위에 있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풍부한 인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그린 '세상의 모든 딸들'처럼 재미 뒤에 감동과 지식이 숨어있는 책도 있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권장도서목록에서 학습과 관련된 책을 완전히 배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공부를 하건 안 하건 공부에 대한 중압감을 떨칠 수 없는 우리의 아이들이 책 읽는 시간만이라도 해방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등장인물의 삶에서 자신의 즐겁거나 괴로웠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몰입하다 보면 정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책, 삶을 음미하게 만드는 책, 그런 책이 많은 권장도서목록이 진정 필요하다.

/대구 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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