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 지음 굿모닝미디어 발행·3만원
유목민족은 어떻게 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경영할 수 있었는가. 부제를 '유목제국의 세계경영사'로 붙인 이 책은 YTN과 야후코리아 홈페이지에 1년 반 동안 연재한 글을 엮은 것이다. YTN 워싱턴 지국장인 저자를 포함한 취재진이 중국 상하이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에 이르는 2만㎞의 여정을 누빈 끝에 만든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삼았다.
유적지를 훑으면서 몽골 제국의 탄생과 부침을 연대기 순으로 따라간 현장성이 미덕이다. 마치 말 등에 올라 칭기즈칸과 함께 유럽 정벌이라도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잘 읽힌다. 서구인의 눈으로 바라본 서구인의 세계정복사가 아니라 동양인의 세계 경영사라는 점에서 책읽기의 속도는 두 배로 빨라진다. 몽골의 세계제국 건설을 '팍스 몽골리카' '중세의 가트(GATT)체제'로 비유하며 '몽골제국으로 인해 막혔던 동서간의 길이 뚫리고 세계의 간격이 좁혀졌다'고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몽골의 고려 침공도 이 책의 관점에서 넓게 보면 유라시아 대교역권 형성사의 일부이다.
몽골제국 세계경영사의 주인공은 단연 테무진(칭기즈칸의 어릴 적 이름)이다. 테무진이 타이치우드족에게 붙잡혀 포로생활을 하는 어린 시절부터 '팍스 칭기즈카나'로 불리는 새로운 시대를 일구고 사망할 때까지가 이 책의 압권이다. 파란만장한 칭기즈칸의 삶과 세계정복 여정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정말 궁금한 것은 '소수의 유목민이 무한한 인적 자원을 갖춘 강력한 문명국가를 짓밟을 수 있었던 이유'. 저자는 늘 사냥을 통해 전술과 협동심을 다질 수 있던 유목민족의 생활습관도 중요하지만 하루에 200∼300㎞를 이동하는 놀라운 기동력, 가벼운 군장과 비상식량, '중세의 인터넷'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빨랐던 말(馬)을 이용한 통신체계 등을 꼽는다. 능력 위주의 조직 운영, 만장 일치의 합의통치도 큰 몫을 했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이 몽골의 역사 유산에 힘입어 성장한 도시이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이끈 것은 몽골의 세계 지배라는 주장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대목은 몽골제국의 이러한 유산을 계승하지 못한 명나라가 중원의 패자가 됨으로써, 뒤처졌던 서구가 동양을 따라잡았다는 주장이다. 몽골을 북방으로 밀어내고 등장한 명나라는 이름과는 달리 실은 '어둠의 나라'로 바깥세계와 담을 쌓고 안으로 빗장을 걸면서, 몽골제국으로 형성됐던 동서 교류의 흐름이 끊어지고 동양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은 흥미롭지만 몽골의 번영에 관한 설명만큼 그 쇠퇴에 관한 분석이 아쉽다. 방대한 분량인데도 색인, 출전 명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점도 그렇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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