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회복세에 빨간불이 켜졌다. 11일 스페인 열차 폭탄 테러를 계기로 경기 불확실성이 증폭되며 세계 각국의 증시가 출렁이고 있다. 반면 국제유가와 금값이 급등하는 등 국제 원자재 대란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특히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이 속도 조절에 나서는 등 글로벌 경제의 둔화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잔치는 이미 끝났고 지금은 대세 하락이 진행중이라는 비관론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이다.글로벌 증시 숨고르기
세계 증시의 나침반인 뉴욕 증시는 최근 완연한 하락세로 접어드는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1만선을 돌파한 뒤 1만1,000선을 향해 도전하던 다우존스지수는 이달들어 하락세로 반전, 17일(현지시각) 1만300.30을 기록하며 심리적 저지선인 1만선을 위협하고 있다. 올해 줄곧 2,000선 위에서 움직였던 나스닥지수는 이미 2,000선을 내놓은 뒤 1,950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달초 1만1,500대의 고점을 찍은 일본 닛케이지수도 최근에는 뒷걸음질 치고 있다. 1년전 8,000대에서 이달초 1만4,000선까지 돌파한 홍콩 항셍지수도 최근에는 1만3,000선 밑으로 다시 엎드리고 있다. 독일 DAX 지수는 최근 4,100대에서 3,800대로 떨어지며 전례없는 급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전세계 증시가 조정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테러 위협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데에도 원인이 있지만, 앞으로 글로벌 경제의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 13년만에 최고치
국제 원자재 가격의 고공 행진은 진정되지 않고 있다. 일부 유가는 13년여만에 최고치를 가를 기록하고 있고 금값은 온스당 400달러를 돌파했다. 17일(현지시각) 4월 인도분 미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배럴당 38.18달러에 마감돼 이라크군이 쿠웨이트를 점령하고 있던 1990년 10월 16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16일 지난해 3월 이후 가장 높은 가격인 33.63달러까지 상승했다. 또 중동산 두바이유가 같은 날 30.95달러로 31달러선에 바짝 다가섰다. 휘발유 가격이 1센트 오를 때마다 미국의 소비자 지출이 10억달러씩 줄어든다는 메릴린치의 분석 등을 볼 때 국제 유가 상승은 세계 경제에 악재임이 분명하다.
뉴욕상품거래소 금 4월 인도분도 최근 온스당 400달러를 돌파했다. 스페인 테러 등에 불안을 느낀 투자자들이 안전자산 선호 현상을 보이며 금값은 1년전에 비해 20% 이상 급등한 상태다.
중국의 속도조절, 미국의 딜레마
중국의 성장속도 조절도 세계 경제 둔화 가능성과 관련,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관영 신화통신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마카이 위원장이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7% 내외로 하향조정하겠다고 밝혔다고 최근 보도했다. 지난해 9.1% 성장률을 기록한 중국이 과열 및 인플레이션 논쟁을 불식하기 위해 취할 긴축조치는 어떤 방식으로든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전년 대비 12.7% 늘어난 5,418억3,000만달러를 기록, 미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미 정부가 경상적자와 함께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재정적자 등 쌍둥이 적자에서 헤어나기 위해 긴축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잔치는 끝났다?
모건스탠리의 앤디 시에 아시아경제담당 수석연구원은 최근 2차례의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기 사이클이 지난해 4·4분기에 정점을 기록한 뒤 둔화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잘못된 저금리 정책이 시중 유동성을 지나치게 부풀림으로써 투기적 거래가 일어났고 이러한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확산,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전세계 거품이 형성됐다는 게 그의 논리이다.
또 메릴린치가 전세계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월간 펀드동향 보고서(16일자)에 따르면 내년 세계 경제가 강세를 띨 것이란 전망이 48%로 나타났다. 이는 1월의 74%, 2월의 65%에 비해 크게 후퇴한 것이고 지난해 4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메릴린치는 "많은 금융 자산들이 마치 불황기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보증권 주이환 수석연구원은 "미국이 경상적자와 재정적자를 축소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경기 둔화를 수반할 것"이라며 "중국마저 속도조절에 나선 만큼 세계 경기 둔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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