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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戰 1년/해방전쟁도 잠시… "명분잃은 전쟁"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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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戰 1년/해방전쟁도 잠시… "명분잃은 전쟁" 추락

입력
2004.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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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20일 오전 5시35분. 홍해와 아라비아해의 미군 항모전단에서 발사된 토마호크 미사일들이 이라크 바그다드에 작열, 거대한 불기둥을 만들어 냈다. 그로부터 40분 후 미국 백악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TV 생방송을 통해 "미국과 연합국은 이라크 국민을 해방하고 세계를 위협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광범위한 공격의 초기 단계에 돌입했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이라크 국민들은 과연 해방됐는가, 세계는 보다 안전해졌는가.

"이라크 전쟁은 재앙이었고, 점령은 더 큰 재앙이 될 것이다. 그 전쟁은 더 많은 폭력과 증오만을 낳았을 뿐이다." 이라크에 주둔한 자국 군대의 철수를 공약으로 총선에서 승리한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 당선자의 일성은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에 의문을 던지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대변하고 있다.

이라크 공격 후 1년은 부시 대통령에게 영욕(榮辱)의 시간이었다. 부시는 지난해 5월1일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 함상에서 '임무 완성'이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뒤로 하고 미군과 연합군의 승전을 선언했다. 단기간에 사담 후세인 체제를 무너뜨린 미군의 승전보는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위상을 전세계에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부시 대통령에게 유엔의 승인 없이 전쟁을 택하도록 한 신보수주의자들은 선제공격 독트린의 실험 성공을 자축했다. 아랍 국가들에 민주주의를 수출할 전초기지를 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은 그들이 바그다드의 폐허에서 건져올린 값진 전리품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짧았다. 포성이 멎은 이라크는 더욱 큰 혼란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어갔다. 후세인의 동상을 무너뜨리는 시민의 모습은 CNN 카메라의 좁은 앵글이 잡은 한 때의 풍경이었다. 카메라 앵글의 사각지대엔 '점령군'에 대한 이라크 인들의 냉소, 시아파와 수니파의 반목,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라크 각 정파가 지난 8일 정부 구성의 근간이 될 임시헌법에 서명함으로써 주권국가로의 이양 절차가 진행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파간 견제와 불신의 뿌리가 깊어 영구적 헌법 제정과 완전한 주권국가의 탄생은 아직은 요원한 희망일 뿐이다.

게다가 후세인의 지지기반인 수니파뿐 아니라 시아파까지도 미국이 이라크 영토를 영원한 전진기지로 삼으려 한다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그들에게 점령군이 가져다 준 해방과 자유는 구속과 억압의 또 다른 모습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않고 터지는 저항세력의 공격은 '해방전쟁' 구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미 500명을 넘어선 미군 사망자 수는 부시 재선 발목을 잡는 재앙이 되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직접적인 이유는 대량살상무기(WMD)였다. 신보수주의자들은 후세인을 제거하면 이라크 땅에서 WMD의 더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전문 조사단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이라크 땅을 샅샅이 뒤졌으나 WMD는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부시 정부가 공격 명분을 위해 이라크 WMD 정보를 왜곡했다는 역풍이 불고 있다.

전쟁의 비극은 이라크 땅에만 머문 것이 아니다. 미국의 일방적인 전쟁 강행은 세계를 갈라놓았다. 테러와의 전쟁을 고리로 느슨하게 묶여있던 미국과 유럽은 참전국과 반전국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갈등했다. 국제사회의 합의 과정을 외면한 미국의 오만은 중동 아랍인들뿐 아니라 전세계에 반미 감정을 확산시키면서 국제 테러의 명분을 키운 꼴이 됐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물리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명분 잃은 전쟁의 멍에 속에서 전쟁의 승전보는 점점 허상으로 채워지고 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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