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反부패의 전사들](9)서울시 38세금기동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反부패의 전사들](9)서울시 38세금기동팀

입력
2004.03.17 00:00
0 0

지난 5일 경기 고양시의 2층짜리 한 고급주택. 대지가 100평이 넘고 시가 10억원에 가까운 부잣집대문앞에 나타난 말쑥한 정장차림의 두 사나이가 초인종을 눌렀다."서울시 38세금기동팀 입니다. 최○○씨 계십니까." "그런 분 모릅니다. 여기는 이○○씨 집입니다." 잠시 후 실제 거주자라는 이씨가 나타났다. 그러나 "분명히 이 곳에 사느냐"는 조사관들의 추궁이 이어지자 당황한 '가짜 거주자' 이씨는 이내 사라져 버렸다. 실랑이끝에 지난 10년동안 7,000만원의 세금을 체납한 최모씨 아들 명의로 등기된 집안에 들어선 조사관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실에 들어서자 고급양주가 가득채워진 진열장, 대형 벽걸이 TV와 도자기, 값비싼 그림 서너점이 한눈에 들어왔다.

조사관들이 최씨의 소재를 묻자 가정부라는 사람이 최씨가 누군지 모른다고 우겨댔다.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조사관이 주민등록증 사본을 들이대자 결국 '진실'을 고백했다. 그는 최씨의 부인 이모씨. 사업에 실패한 최씨는 주소지를 이 곳 저 곳으로 옮기고 재산은 친인척명의로 빼돌린 후 이 곳에 살고 있었던 것. 이런 와중에 최씨의 두 아들은 해외 유학까지 다녀왔다. 거실 곳곳에 '가압류' 딱지를 붙이며 조사관들은 한숨을 돌렸다. 한 달 넘게 추적한 끝에 '미꾸라지' 세금체납자 최모씨에게 '조세정의'의 따끔한 맛을 보여줬기 때문.

세금 징수 高手들이 모인 '외인구단'

서울시의 '38세금기동팀(이하 38기동팀)'은 고액 체납자의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2001년 10월 출범했다. '38기동팀'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38조의 '38'과 '세금기동팀(Tax Task Force)'을 합친 말.

38기동팀은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불린다. 기동팀은 체납 세금 징수를 담당하는 1,2팀(36명)과 결손시세 관리, 악질체납자의 세금징수를 임무로하는 3팀(8명)으로 나뉜다. 1,2팀은 자치구에서 파견된 25명의 '특급' 세무담당 공무원과 은행, 보험사의 금융재산추적전문가, 자산공사의 재산공매처분전문가등 3명의 '용병'등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4월 창단한 3팀은 '재야의 저승사자' 민간채권추심전문가 6명등으로 팀을 짰다.

기동팀은 개인별 혹은 2,3명이 한조가 돼 특별단속을 벌인다. 우선 각 구청에서 전달 받은 500만원이상 체납자와 주변 친인척의 재산, 거주지 변동 ,출국 여부 등의 자료 분석에 들어간다. "보통 체납자 한 사람의 자료를 검토하는 데 한 달 이상 걸린다"는 이윤구(42) 조사관은 "체납자들의 세금 포탈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져 꼼꼼하게 자료 분석을 하지 않은 채 현장에 뛰어들었다간 낭패보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체납자가 있다면 지구 끝까지라도

기동팀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체납자들의 실제 거주지를 찾아 내는 일. 상당수 고액 체납자들은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수 차례 옮기며 재산을 친인척 명의로 돌려놓기 때문. "많은 체납자들이 호화주택에 살고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면서도 '빈털터리'라며 막무가내로 버틴다"는 이용범(36)조사관은 "세금을 충분히 낼 수 있는데도 서류상으로는 재산이 거의 없어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일단 세금체납자들이 '뭔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기동팀은 본격적인 세금 징수에 들어간다. 진태호(38) 조사관은 "처음에는 자진 납세 하도록 설득하고 실제 많은 이들은 순순히 따른다"며 "그러나 혀를 내두를 만큼 교묘한 방법으로 빠져 나갈 궁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애를 먹기 일쑤다"고 토로했다.

체납자의 부동산은 물론 차량, 급여, 채권을 비롯한 금융자산 등에 대한 압류와 공매가 대표적인 징수 방법. 또 체납자를 신용불량자로 등록하고 재산은닉 혐의가 있으면서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는 5,000만원 이상 고액체납자에 대해서는 법무부에 출국금지를 요청한다. 거기다 외교통상부에 여권발급정지를 요청하고 공공기관이 허가하는 사업을 제한하는 등 법이 허용하는 행정, 사법상의 제재조치를 내린다.

지금까지 38기동팀은 자칫 날릴 뻔했던 서울시의 체납 세금 6,497억원 중 3,169억원을 징수했다. 이중 894억원을 발로 뛰어 직접 징수했고 1만 5,000여건의 압류로 1,700억원에 이르는 조세채권을 확보했다.

조세범처벌 관계법령 개정 절실

38기동팀 관계자들은 그러나 체납자들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칠 때가 많다고 아쉬워 한다. 조세범처벌법에 따르면 처벌대상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1년에 3회 이상 체납한 자'로 돼 있어 10억원을 체납해도 3회를 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정당한 사유'라는 규정도 애매모호해 확실한 처벌이 어렵다. 또 세금 체납자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일괄계좌조회와 신상공개의 대상도 각각 '체납액 500만원 이상'과 '체납액 10억원 이상'으로 한정돼 있다.

김선모(48) 조사관은 "어렵사리 악질 고액 체납자를 찾아내도 처벌을 못할 때가 많다"며 "체납된 지방세의 징수를 강도 높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무 부처인 행정자치부가 관계 법령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여성 조사관 3人

"'벌금 낼 테니 고발할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버티는 체납자들을 보면 화가 울컥 치밀어 오릅니다."

38세금기동팀 3인의 여성 조사관은 재산이 있으면서도 교묘하게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뻔뻔한 체납자'를 '가장 나쁜 유형'으로 꼽는다. 이순덕(39)조사관은 "수 천만원 이상의 고액 체납자들 중 상당수가 '형사 고발시 벌금 50만원'이라는 조세범처벌법을 악용하고 있다"며 "체납자를 심판해야 할 법이 오히려 이들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염숙진(33) 조사관은 "밀린 세금을 평생동안 다 내기 힘든 상황에서 매달 조금씩 나눠 내는 체납자도 있는 반면 법을 알고 충분히 세금을 낼 수 있는 부유층이 세금 내기를 더 꺼린다"고 꼬집었다.

'시치미형 체납자' 역시 곤혹스러운 존재이다. 염숙진 조사관은 "가족이나 친구를 내세워 세금 낼 돈이 없으니 결손 처리 해달라고 요구하는 체납자도 있다"며 "재산과 사업체의 명의를 가족 앞으로 해놓고 떵떵거리며 살면서 '난 아무것도 없다'고 버티는 '얌체족'도 경계 대상"이라고 말했다.

친·인척등 주변 사람들이 '거짓말'로 체납자를 감쌀 때는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가족들은 물론 한 동네 이웃들까지도 체납자를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이미자(38) 조사관은 "심지어 체납자를 보호하려고 '그 사람 때문에 나도 큰 손해를 봤다'고 둘러대는 철면피 같은 가족도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애로사항도 적지 않다. 때때로 '험한' 체납자를 상대하다보면 신체 위협까지 느낄때도 있다. 이순덕 조사관은 "남성 조사관 앞에서는 바짝 긴장하다가도 우리들 앞에서는 '고자세'로 나오는 체납자들이 많다"며 "늦은 시간까지 체납자를 찾아 돌아다녀도 끄떡없는 체력을 유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숱한 난관에 힘들때도 많지만 '조세정의 실현'의 파수꾼이라는 자부심만큼은 대단하다. 이미자 조사관은 "그 동안 쌓아온 세금 관련 지식과 경험을 38기동팀에 모두 쏟아 부을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며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대다수 국민들이 고액체납자들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라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