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한 지 1년이 가까워 오지만 이라크의 평화정착은 요원하다. 구체제가 몰락했지만 신체제는 자리잡지 못한 아노미 상태가 이라크인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6월 말로 예정된 미군의 이라크 주권이양 이후 전망은 파벌간 헤게모니 다툼으로 극히 불투명하다. 미군이 점령군으로 인식되는 데다 젊은 엘리트 계층이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IGC)를 불신하고 있어 정국 주도세력도 오리무중이다.민생수준 회복 아직 요원
전후 이라크 주민의 생활은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전쟁 전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후세인 체제가 보장했던 치안과 최소한의 경제수준을 회복하기까지는 상당기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바그다드 시내 티그리스 강변의 고급 주택단지는 주인이 바뀌었다. 바트당 고위층 등 후세인 측근세력이 거주하던 이곳을 빈민층 등 과거 소외계층이 무단 점유한 것이다. 하지만 새 주인들의 생활은 덩그런 주택을 제외하면 나아진 것이 없다. 도시는 테러공포에 휩싸여 있고 미군과 이라크 군·경은 치안확보에 역부족이다.
농촌 피폐로 인한 농산물 가격 폭등도 심각하다. 특히 미군 장갑차량 등이 저항세력 소탕을 위해 농경지를 훼손하고, 저항세력 혐의로 젊은이들을 무차별 잡아들이면서 노동력 부족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알 자지라 방송은 지난달 구금된 농촌 젊은이들이 수천 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실업률은 회복되는 추세다. IGC는 지난달 전쟁 직후 50∼70%로 높아졌던 실업률이 20%대로 회복됐다고 밝혔다. 올해 135억 달러를 목표로 하는 석유수출 확대와 해외 지원자금 등 과도정부의 지출증대에 힘입은 것이다. 하지만 민간부문을 통한 경제안정은 낙관할 수 없다.
저항세력·파벌갈등 혼란
과거 후세인의 폭력에 침묵했던 각 종파와 파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정국안정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 등 주요 세력들은 권력이양 이후 주도권을 잡기 위해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고 시아파 내부에서도 강온파 분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파벌 분립 상황은 IGC 위원 구성에서 잘 나타난다. 위원들은 시아파 13명, 수니파 5명, 쿠르드족 5명, 투르크멘 1명, 앗시리안 기독교도 1명으로 이뤄져 있다.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시아파는 대지분을 요구하는 반면, 쿠르드족은 북부 주요 거주지역에서 자치권 확보를 위한 안전장치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다 미국이 시아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쿠르드족을 지원하면서 파벌간 알력은 심화하는 형국이다. 저항세력도 미군에 협력하는 이라크인뿐 아니라 시아파 주요 성지와 쿠르드족 집회장 등을 공격함으로써 종파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첩첩산중 권력이양 과정
8일 승인된 임시헌법은 주권이양을 위한 기본틀을 제시한 데 불과하다. 미국은 임시헌법이 내년 중 제정될 이라크 헌법의 골격이 될 것으로 희망하지만 이라크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무엇보다 IGC가 이라크 지식인들의 강한 불신을 받고 있어 정권인수 주체로서의 정당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바그다드의 일간지 알 자만은 22일 여론조사를 인용, 대학교육을 받은 이라크인 72%가 IGC의 정권인수에 반대한다고 보도했다.
6월 말 주권을 이양 받은 이라크 정부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주목된다. 이들이 각 파벌의 이해계산에 따라 미군철수를 요구할 경우 극도의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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