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차기 총리가 선거 승리 직후 "이라크 주둔 스페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공약을 재확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사파테로 차기 총리는 15일 국내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전쟁은 재앙이었으며, 이라크점령은 더 큰 재앙을 낳고 있다"면서 철군을 기정사실화 했다. 차기 외무장관으로 유력시되는 미구엘 앙헬 모라티노스도 "스페인의 외교정책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밝혀 친 미국적인 외교노선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과 영국은 일단 관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댄 새너 이라크 주둔 연합군 대변인은 이날 "스페인 군인들은 이라크에서 영웅적인 임무를 수행 중"이라고 치켜세웠고,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도 사파테로 총리와 15분 동안 전화를 주고받았다면서 친분에 이상이 없음을 과시했다.
그러나 사파테로 총리의 발언이 반전여론 확산이나 다른 이라크 파병국가의 철군 도미노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16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테러리스트 근절에 100% 동의하지 않으면, 100%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누구도 이슬람 대 테러전쟁에서 손을 뗄 수 있다고 말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해 8월부터 이라크에 주둔한 스페인군은 1,300명 규모로 전체 이라크 주둔 연합군(약15만5,000여명)의 0.83%에 불과하지만 이라크 치안 확보에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왔다.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 남미 주둔군의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1,200명 규모의 이라크 민병대를 훈련시키기도 했다. 더구나 최근 스페인은 오는 7월1일부터 폴란드군이 담당해온 다국적국 지휘권까지 넘겨받기로 예정돼 있었다.
스페인의 철군은 곧 이라크 최대 종파이자 이라크 주권이양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시아파 18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나자프와 카디시야 치안확보에 큰 구멍이 뚫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스페인이 미국 영국과 함께 이라크전을 강행한 주축국이라는 점에서 철군은 동맹국에 심리적 타격과 함께 향후 이라크 재건 일정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군의 철수가 실제로 이루어질지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사파테로 총리는 "유엔이 (이라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지 않으면"이라는 단서를 철수 조건으로 달았기 때문이다.
미국 주도로 새로운 유엔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면 사파테로 총리에게 이라크 잔류의 명분을 제공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전 유엔 사무총장은 "사파테로의 철군 발언은 90%에 이르는 국내 반전여론을 의식한 상징적 제스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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