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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야곱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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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야곱의 눈물

입력
2004.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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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나는 왠지 모르게 구약 성경에 나오는 야곱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 이마에 새겨진 깊은 주름살 속에서 야곱의 험난한 세월을 읽는다. 애굽 왕 앞에서 야곱은 말한다.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야곱은 성격이 온순하였으나 계산이 빠르고 성공에 대한 야심이 남달랐다. 형을 설득하여 장자권을 획득하고, 눈 먼 아버지에게 형 행세를 하여 그의 축복을 대신 받아낸다. 이후 형으로부터 살아 남기 위해 친척 라반에게로 피신한다.

그가 다시 세력을 확보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형이 강 건너에서 군사 사백 명을 거느리고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을 받는다. 이 때 야곱이 선택한 전략은 나아가 그들과 정면 대결을 벌인 것이 아니었다.

얍복 나루에서 그는 자신의 소유와 가족을 먼저 건너가게 하고 홀로 거기에 남아 밤을 하얗게 지샌다. 이 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났고, 그는 그에게 죽도록 매달린다. 하나님은 그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환도뼈를 꺾으셨고, 그는 비로소 눈이 뜨여 그가 하나님의 사자인 것을 알고 울며 회개했다고 선지자 호세아는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회개를 기뻐 받으셨으며, 그로 인하여 그는 '이스라엘'이라고 칭함을 받았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세력의 힘과 정략적 지혜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 앞에 울며 회개할 때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크게 쓰임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드디어 야곱은 형을 만나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형 에서는 그의 목을 안고 울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원한에 가득 찬 형의 마음도 녹여 주고 마침내 한 혈육의 정을 나누게 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고, 그의 열두 아들은 그 민족의 십이 지파가 된다.

탄핵 정국을 맞아 노 대통령도 야곱처럼 밤을 하얗게 지샜을 것이다. 탄핵 과정에서 그와 대적한 것은 눈에 보이는 193명의 야당 의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보수 자본의 논리를 수호하기 위해 구조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아무 대책 없이 길거리로 내몬 자본의 힘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 대통령마저 길거리로 내몰려고 하고 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그들의 목 깊숙이까지 칼을 들이대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처음부터 '험악한 꼴'을 보기로 작정했을 것이다.

이 마당에 노무현 대통령은 얍복 강가에서 고민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강을 건너 형 에서와 싸울 것인가, 아니면 그에게 무릎을 꿇을 것인가. 그러나 그가 택한 묘한 선택은 '십자가 효과'로 나타났다. 탄핵 정국을 피해갈 수도 있었지만 기자회견을 통해 스스로 칼을 맞은 것은 어떻게 보면 인간적 계산에 의한 정치 9단의 솜씨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었다. 그 덕분에 그를 구석으로 몰고 간 거대 야당들은 마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난 이후에야 그것이 실수였음을 깨달은 것처럼 사태 수습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나는 다시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과정을 상기한다. 인간적 계산과 정치적 책략만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원하는 시민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싸움의 목적은 '내편의 이김'에 있지 않고 '모두의 변화'에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편 가름의 갈등 상황으로 몰아가서는 안된다.

우리는 '한 사람의 잘난 대통령'을 바라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못 박으면서 세상의 눈을 뜨게 하는 진정한 사회개혁가'를 원한다. 자존심을 버리고 대적하는 자들을 포용하는 진실의 눈물을 통해 그는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로 기름부음을 받게 될 것이다.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신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한 숭 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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