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서 가장 조용한 기관으로 꼽히던 헌법재판소 분위기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접수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외부로 통하는 문마다 무장 전경들이 배치됐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기자들과 헌법재판관들 사이에 쫓고 쫓기는 장면까지 연출된다.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홀로 멀찍이 떨어져 종로구 가회로에 자리잡은 헌재는 기자들도 1년에 서너번 찾을 정도로 한적한, 말 그대로 '결정문'만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곳이었다.그런 헌재에 갑자기 100여명이 넘는 기자들이 몰려들고 방송중계차량까지 상주하고 있으니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헌법 재판관들의 표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어디 언론뿐인가. 일반 국민과 네티즌들의 관심은 그 이상이다. 헌재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탄핵 결정 시기는 언제가 좋다''평의를 왜 그렇게 늦게 잡았느냐'는 글에서부터 탄핵심판 결과를 예단한 협박성 글까지 하루 수천 건의 의견이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차떼기'한 돈으로 정치권이 재판관들을 매수할 것이니 막아야 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우려도 떠돌고 있다. 헌재 민원실은 업무 관련 문의보다 탄핵심판에 대한 의견 개진 전화가 더 많이 걸려와 실제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헌재에 집중되고 있는 헌재 밖의 떠들썩한 관심은 탄핵정국에 대한 우려와, 이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 바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온 국민의 이 같은 '우려와 바람'은 평온했던 헌재를 너무나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지금은 너도나도 나서서 헌재에 이런저런 주문을 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헌법재판관들이 평상심을 잃지 않도록 조용히 지켜보는 여유가 필요한 때 아닐까. 정치권이 헌법 위에 군림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아 줄 결정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진희 사회1부 기자 riv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