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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가결 이후/高대행, 정치권과 "등거리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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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가결 이후/高대행, 정치권과 "등거리 행보"

입력
2004.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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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15일 회의에서 총리실 간부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야3당 대표가 요청한 임시국회 시정연설을 사실상 거부했다는 언론보도 때문이었다. 고 대행은 "개인의견을 흘리는 바람에 언론이 앞서 나간 게 아니냐"며 간부들을 탓했다. 김덕봉 총리공보수석은 회의 분위기를 기자들에게 알리며 "4당이 합의하면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게 고 대행의 뜻"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여당이 임시국회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에 고 대행은 시정연설을 거부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때문에 열린우리당은 고 대행의 결정에 쾌재를 불렀다. 야당은 야당대로 "여권이 고 대행의 발목을 잡은 것"이라며 여전히 그를 두둔했다. 고 대행은 여야 모두의 지지를 얻으며 자신의 뜻을 관철한 셈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통해 고 대행은 자신을 단숨에 총리급에서 대통령급으로 격상했다는 것이다. 총리는 국회가 부르면 만사를 제쳐놓고 나가야 하지만, 대통령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시정연설을 하기 때문이다. "총리가 행정의 달인이었던가, 정치의 달인이었던가." 이날 과정을 지켜본 한 총리실 관계자의 감상이다.

자신의 역할을 탄핵국면의 관리자로 국한해온 고 총리가 하루하루 보폭을 넓히고 있다. 국회에 대해 위상을 확립한 고 총리는 지체 없이 "여야간 정치논리, 정치게임을 초월한 국정안정"이라는 '고건식 국정운영기조'를 천명했다. 이말에는 임명직 총리이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있는 동안에는 여야간 등거리 노선을 걷겠다는 뜻이 함축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 대행은 또 이날 각 시·도지사에 대한 자신의 친서를 발송하도록 지시했다. 지방행정에 대한 당부를 끝으로 경제 외교안보 내치 순으로 계속된 권한접수 프로그램은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이제 고 대행에게 남은 과제는 직무가 정지된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다. 이와 관련, 고 대행은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의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국정연속성을 위해 대통령께서 (업무를) 파악할 수 있도록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 발언은 노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동안의 대리인임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가름할 진정한 시험대는 여전히 대통령 사면법 개정안 처리에 대한 고 대행의 선택이다. 이에 대한 노 대통령측의 입장은 이미 결정돼 있다. 공명선거관계장관 회의에서 강금실 법무장관은 "사면법 개정안은 재의 요구가 합당하다고 본다" "재의요구안을 준비하고 있다" "법무부가 주무부서다"는 등 강한 어조의 방향성 있는 말들을 쏟아냈다. 고 대행은 "사면법은 관계부처가 충분히 검토한 뒤 내 지침을 받으라"고만 밝힌 채 특별한 언급이 없다. 반면 고 대행측 관계자들은 "백지상태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권한을 적극 행사할 뜻을 시사하고 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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