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시행된 새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대해 80여 개 시민단체가 연대해서 '불복종 운동'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난데없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불복종 운동이란 어느 정도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국가에서 정의가 실현되고 있지 않을 때 시민들이 법률을 공개적·의식적으로 위반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운동 방식은 공익성, 비폭력성, 신중성, 공개성 등을 요건으로 하며 특히 양심적이어야 한다. 불복종 운동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가 실현되고 있지 않다고 보는 시민들의 존재를 요건으로 한다.
많게는 수만에 이르는 사회적 약자들이 도심 차도 위를 행진하며 연호하지 않고서는 의사를 표현할 수단이 전혀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고 치자. 이번 개정 법률에서 주요 도로에서 행진을 엄격하게 제한한 것이 정의에 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집회의 소음으로 고통받는 시민들의 평온한 삶을 보호하기 위해 집회·시위 참가자들에게 소음을 줄이는 양보를 강제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불합리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하자. 개정된 집시법으로 우리 사회의 '정의'는 상처받게 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민운동이 '정의'를 독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민이 선택한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의원 입법을 통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기에 이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집회와 시위 문화가 바뀌는 '정의'의 상태를 바라는 시민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불복종 운동의 방식은 위에서 말한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충족된다고 하더라도 또한 신중해야 하고 비폭력적이어야 한다.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내용 중 많은 부분에 대해 시행상의 '우려'만을 이유로 불복종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은 이러한 원칙에도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집시법의 시행령과 운용규칙을 정하는 데 있어서 정부가 폭 넓은 의견 수렴의 기회를 열어놓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당시의 낙선 운동을 성공적인 '불복종 운동'으로 평가하면서 한 시민운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낙선 운동은 '시기적 절박성'에 근거해 제기된 운동이었다. (중략) 자구적 수단으로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식이었다."
시행한 지 보름이 채 지나지 않은 집시법에 대한 불복종 운동이 시기적 절박성에 따른 마지막 선택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민운동의 근간은 시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영향력이다. 침묵하는 다수가 절망해 온 우리 시위 문화의 현 주소를 자각하지 못한다면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정체성의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고언에 귀를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강 기 택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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