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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모두가 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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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모두가 패자다

입력
2004.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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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12일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를 의결함으로써 누가 승자(勝者)가 되었을까. 누가 패자(敗者)이고, 누가 덫에 걸렸을까.시간이 흐르면서 승패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통과 직후 여당 의원들은 통곡했고, 야당 의원들은 마침내 큰 일을 해 치웠다는 안도감이 역력했다. 그러나 차츰 야당 쪽엔 패색이 깃들고, 여당 쪽에선 비수 같은 미소가 감지되고 있다.

탄핵 소추로 덫에 걸린 사람은 분명히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러나 그는 여유를 되찾았고, 야당들은 초조해 하고 있다. 여권은 결속하고, 야권은 분열하고 있다. 탄핵안 통과 후의 지지도 변화 때문이다.

각 언론사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34∼38%로 치솟고, 한나라당은 10∼16%, 민주당은 6∼7%로 떨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탄핵안을 발의하여 기세를 올리려던 야당들의 계산은 빗나가고 있다.

그러나 탄핵안 통과 전후의 여론조사 결과들을 살펴보면 정당 지지도 이외의 항목에서는 변화가 없다. 탄핵에 대해서는 반대 70% 찬성 30% 선이고, 노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서는 "잘못이다" 70% "잘못이 없다" 30% 선이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충격 속에서도 한결같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노 대통령의 고정 지지자와 고정 반대자는 각각 30% 정도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나머지 40%의 생각이 중요하다. 그들은 노 대통령의 태도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탄핵 사유는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들은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다. 노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할 때는 반노(反盧) 30%와 합쳐 70%가 되고, 탄핵에 반대할 때는 친노(親盧)와 합쳐 70%가 된다.

야당들은 친노도 반노도 아닌 중간층의 반대를 외면하고 탄핵을 강행하여 돌아올 수 없는 역사의 강을 건넜다. 그들은 총선을 앞둔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명분 없는 탄핵에 운명을 걸었다. 그리고 결국 노 대통령의 승부수에 말려들어가 노 대통령을 걸려던 덫에 자신들이 걸리고 말았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비수 같은 미소를 숨긴 채 전화위복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어떤 국면전환이 온다 해도 그들이 '승자'가 될 수는 없다. 탄핵을 피하지 못했거나 피하지 않았거나 그것은 대통령으로서 용서받기 어려운 중죄다.

노 대통령은 탄핵안이 상정된 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사태가 온 큰 이유는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대통령'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예상 못한 사람이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기득권 세력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사건건 흔들다가 끝내 당치 않은 이유로 몰아내려 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 맞을까. 대통령이 주류 출신이 아니어서, 대학을 못 나와서, 개혁으로 기득권층을 위협해서, 정치자금 수사로 정치인들을 압박해서, 대통령을 흔들어대는 것일까. 일부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피해의식으로 자신의 허물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얕보인 것은 그가 대학을 못 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과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핵심을 피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장황하게 변죽을 두드리는 그의 화법은 지난 1년간 국민을 지치게 했다. 그의 화법은 많은 국민들에게 '악몽' 수준이었다. 야당이 탄핵을 밀고 나간 배경에는 대통령의 진의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

지금은 모두가 패자다. 대통령은 물론 야당도 여당도 패자다. 민주당은 탄핵 의결 후 "의회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의회 민주주의를 악용한 횡포였다.

덫에 걸린 것은 패자인 대통령과 국회를 가진 대한민국이다. 국가가 덫에 걸려 있는 위기에 국민이 분열해서는 안 된다. 친노도 반노도 충격과 분노를 삭이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촛불시위로 사태를 반전시킬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원칙만이 오늘의 우리를 구할 수 있다. 패자들은 입을 다물고, 국민은 현명해져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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