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외도에 자극을 받아 맞바람을 피우다 돈 한푼 받지 못하고 쫓겨난 여자. 동거남에게 사랑을 다 바치지만 배신 당하는 또 다른 여자. 기구한 운명의 두 여자는 자매다. 20일부터 방영되는 KBS2 주말드라마 '애정의 조건'(토·일 오후 7시 50분)은 강금파, 은파 자매를 통해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여자의 인생에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남는 현실을 그린다. 무너지는 가정과 젊은이들의 성 풍속도를 정면으로 다룰 이 드라마에서 금파 역은 톱 탤런트 채시라(36), 은파 역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스타덤에 오른 한가인(22)이 맡았다.●이혼만은 절대 안되지만… "이혼녀役 Again"
"이혼은 절대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제가 굉장히 보수적이거든요. 이혼을 결정하기 전에는 100번 아니 200번이라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나요?"
그러나 극중에서는 또 다시 이혼녀다. 그는 MBC 주말드라마 '맹가네 전성시대'(2002년)에서 이혼을 두 번이나 하고 성(姓)이 다른 두 아이를 키우는 맹금자를 연기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시청률도 낮았고 작품성도 인정 받지 못했다. 1984년 초콜릿 광고 모델로 방송에 데뷔한 이래 '서울의 달' '여명의 눈동자' '미망' '왕과 비' 등 출연한 드라마마다 성공을 거뒀던 그에게 '맹가네 전성시대'가 남긴 상처는 컸다. 스스로 "배가 산으로 올라간 케이스"라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도 이혼녀 역할을 맡은 까닭에 대해 그는 "김종창 PD와 문영남 작가 그리고 삼화프로덕션이라는 좋은 제작사를 믿었다. 이혼을 하게 되는 과정이 전 작품에 비해 훨씬 설득력 있게 그려져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맡게 됐다"고 답했다. "나이가 들어서 나쁜 점보다는 좋은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연륜이 쌓이고 모든 부분이 성숙해졌으니까요. 그런 만큼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소화하는 게 당연하다고 봐요."
'애정의 조건'에서 그가 맡은 강금파 역은 변호사 남편과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살뜰한 가정주부. 남편이 회사 후배와 바람을 피우는 걸 알면서도 용기가 없어 혼자 속을 태우다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연하남과 위태로운 관계를 맺고 들통이 나 위자료 한푼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여자다.
채시라는 오는 10월부터는 KBS 대하사극 '해신'을 통해 이혼녀 대신 바다를 지배한 장보고의 라이벌 '자미부인'으로도 팬들을 찾을 예정이다. "착한 여자는 사실 매력 없거든요. '왕과 비'의 인수대비 같은 악녀나 개성 넘치는 역할이라면 미움을 받더라도 저는 좋아요." 2004년은 채시라가 30대의 농염한 아름다움을 연기로 꽃처럼 피워낼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해가 될 것 같다.
●“동거의 "동"자도 모르지만… "동거녀에 All-in"
비뚜름하게 쓴 모자, 얼굴을 반쯤 가리는 커다란 선글래스, 헐렁한 건빵 바지. 9일 서울 하야트호텔 '애정의 조건' 제작발표회에 나타난 한가인은 도무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다. 하기야 극중에서는 동거남에게 맞아 눈두덩에 시퍼렇게 멍이 들질 않나, 노란 가발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세일러문 코스프레 복장의 웨이트리스로 나오기까지 하니 그에 비하면 별 것 아닌 셈이다.
오밀조밀하고 가녀린 얼굴 선이 옛 미인도에 나오는 가인(佳人)을 떠올리게 하는 그에게서는 자연스럽게 청순한 이미지가 느껴진다. 2002년 아시아나항공 CF에서는 따뜻하고 섬세한 스튜디어스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는 올리비아 핫세를 꼭 닮은 여고생 강은주로 나와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한가인이다. 그런 그가 '애정의 조건'에서는 미혼모로 전락한다. 그가 맡은 은파 역은 지방대 생으로 바람둥이인 전성기(박용우)와 동거를 하지만 결국 버림받고 그가 남긴 카드빚을 떠맡는, 상처 받은 여자. 하지만 노윤택(지성)의 사랑이 그를 구원한다.
"남자랑 동거를 하고 미혼모까지 된다니 처음 은파 역을 제안 받았을 때 절대 못할 것 같았어요. 저는 물론 제 주위 친구들도 동거의 '동' 자도 모르거든요." 그래도 그가 은파 역을 맡은 건 순전히 욕심 때문이었다. "김종창 감독님이 '좋은 역할이 있는데 소화하기 어려울 거다. 만약 네가 잘해준다면 큰 연기자로 클 수 있다'고 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맹랑하고 어떻게 보면 속이 꽉 찬 대답이다. 그는 극중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일본 만화 세일러문 비디오를 빌려다 보며 동작을 흉내내고 노래도 배웠다. "'사랑과 정의의 힘으로… 하고 시작되는 말투도 따라 하느라 좀 힘들었어요."
"현실적으로는 지성씨가 맡은 노윤택을 선택해야겠죠? 하지만 전성기 같은 인물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또박또박 자기 생각을 밝히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걱정은 겸손의 다른 표현으로만 들렸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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