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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원로에게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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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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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국회는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였다.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고 그 권한은 총리가 대행한다. 사이버 공간과 거리에는 여당과 그 지지집단의 분노가 들끓는다. 자칫 권력 공백이 불확실성, 불안정성, 갈등 심화 그리고 북 핵보다 더 큰 지도력 위기를 야기할까 걱정이다. 시급한 것은 이 위기 국면을 슬기롭게 수습하고 탄탄한 위기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정치의 날개는 추락해도 국민지혜의 날개가 균형을 잡을 차례다.

사실 어떤 위기에도 인과가 있다. 법적 요건 충족 때문이기는 하지만 탄핵의 직접요인은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 혐의다.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의 의견이다. 선관위 의견을 진솔하게 존중하였더라면 탄핵 정국을 면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크다.

간접원인의 핵심은 진보적 정부·여당의 개혁 추진이 보수 야당 등 기득권층을 분해시킬 것이라는 위기감에 대한 저항이다. 그래도 개혁을 통하여 40년 권위주의, 분단을 둘러싼 편향적 이념, 지역 집중의 정치구도, 지연과 학연에 얽매인 사회의 경직성은 타파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개혁 이념과 내용은 지역구도 타파 이외에 뚜렷하지 않다. 정강정책도 아이디어 선점주의와 시책 동조에 그쳐 야당과 차별성도 없다. 개혁추진력과 갈등조정력은 아직도 알 수 없다. 지도력 부재 대신 소수 여당의 한계라면 충무공이 단 12척의 배로 왜선 수백 척을 물리친 임진왜란 때의 명량대첩을 상기시키고 싶다. 또 자유민주사회에서는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끼리만 뭉쳐 세상이 잘못되었으니 때려부수어야 한다고 외쳐서는 통치가 불가능하다. 대부분이 장년층인 보수기득권층의 이념적 편향성과 자기방어 성향에 시대적합성이 약한 것은 사실이나 사회적 저항세력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탄핵 정국이 정상화되면 노 대통령과 여당은 다원성 속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여유로운 지도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사회구성원을 적 아니면 동지라는 이분법적 대립구도 속으로 몰아넣게 된 것이 우연이었다면 각성하고, 의도적이었다면 국가를 담보로 하는 위험한 정치도박이기 때문에 반복해서는 안된다.

다행히 쿠데타나 남침위협설은 없다. 대신 대통령 직무 대행 체제가 가동되었다. 헌법재판소도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시키고 있다. 그래도 탄핵에 반대하는 집단의 저항은 증폭된다. 지혜로운 대화로 사회 안정을 꾀하는 한편 헌법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탄핵 결정 절차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

그래도 우리 사회의 정치 공백 위기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 위기와 사회 갈등 증폭 때 이를 완충시킬 수 있는 위기관리 체제가 불비되었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는 국가 원로는 많지 않고 실권은 없다 하더라도 내각제 하의 대통령이나 입헌군주제 하의 군왕, 대통령제 하의 상원과 같은 헌법기구도 없다. 이제는 존경받고 도덕성 높은 원로집단을 모실 때인 것 같다. 또 지금은 신속한 의사결정만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므로 비록 옥상옥의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양원제, 금기이기는 하지만 만일 내각제를 고려한다면 역시 존경받을 만하고 원로급인 대통령을 선출하여야 할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에 배심제도도 없고 정치적 판단을 할 수도 없지만 탄핵재판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라도 헌법재판소는 여론보다는 그나마도 적은 몇 분 원로들의 의견만이라도 경청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과 헌법 그리고 양심의 재판은 정치·사회상으로부터 분리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이 지혜롭기는 하지만 위기를 겪지 않고는 그 심각성과 대응의 절박성을 알기 어렵다. 그래서 헤겔이 가르친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단 하나는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라는 명구를 다시 새기며 탄핵소추로 야기된 위기 국면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 같다.

전 철 환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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