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요즘 왜 부쩍 이렇게 자살하는 사람이 많지?"라고 느끼던 때가 있었다. 지난해부터 자녀와의 동반 자살, 몇몇 유명인의 자살 등에 이어 최근엔 왕따 파문이 일어난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자살하기까지 했다. 거론된 이유는 생활고, 신상비관, 각종 심리적 압박 등 다양했으나, 이유를 떠나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정신과 전문의들은 늘 자살과 정신질환의 관련을 강조하지만 지난해 이후 드러난 자살의 행태는 '전염병'에 가깝다. 자살 사건이 보도된 다음날이면 또 다시 다른 자살이 일어났고, 앞서 보도된 자살 사례와 똑같이 자녀와 함께 자살을 시도하곤 했다. 자살의 전염성은 18세기 유럽에서 이미 문제가 돼 '베르테르 효과'(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많은 청년들이 자살했던 현상)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과연 자살은 알려질수록 실제 늘어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자주 보도될 뿐일까.
11일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자살예방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심포지엄 '미디어―자살 예방의 중추적 역할'을 보면 언론 보도가 실제 자살률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자명하다. 이 자리에선 자살보도 직후 며칠간 자살률이 급증한 것을 확인한 해외 사회학자들의 연구와, 오스트리아가 1980년대 말 언론의 자살 보도를 억제한 후 자살률이 크게 줄어들었던 사실 등이 발표됐다.
국내 한 일간지의 보도를 조사한 결과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자살을 다룬 한 일간지 보도가 연 24∼26회였던 반면 2003년 자살 보도는 48회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는 점도 밝혀졌다. 자살사건과 보도횟수가 쳇바퀴처럼 맞물려 상승효과를 일으켰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의사들은 "똑 같은 외부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정상인은 기분이 처질 뿐이지만 우울증 환자는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신질환의 진단 치료를 강조하고 있다. 확실히 자살은 정신질환의 극단적인 증세다. 동시에 자살은 전염병이다. 독감이나 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 국민이 스스로 개인 위생에 신경쓰듯 주변에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자살을 하려는 사람은 늘 절실하게 도움을 청한다. 거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사회 전체를 자살로부터 구하는 길이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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