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에 보급은 내게 복음 전파와도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1994년 7월 7일은 뜻 깊은 날이었다. 나는 이날 프라자호텔에서 '건강강연 1,000회 돌파'를 기념하는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 출판기념회를 겸한 모임에서 격려사를 낭독한 인사만 7명이었다. 행사가 오후 7시에 시작됐으니 7자가 4개나 겹친 셈이다. 강원룡 목사와 권호경 당시 CBS사장, 서경석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 장순하 시인 등과의 인연은 설명한 바 있다.나머지 3명은 영화 '팔도강산'으로 유명한 동아대 동기동창 배석인 감독과 고향 통영 후배인 김동욱 의원, 김태수 당시 한국자연건강학회 회장이다. 강 목사는 이 자리에서 "김 선생은 우리나라에 알로에를 보급하고 알린 것 하나만으로도 이 세상에 태어난 가치와 사명을 다한 사람"이라며 추켜세웠다.
강 목사는 이런 말도 했다. "김 선생은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믿음도 없고 남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많이 했다. 여자 관계도 그렇지만 섹스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보일 만큼 솔직한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독교를 공부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는 진짜 윤리적인 인간의 모델이다. 아첨이 아니다. 예컨대 돈을 버는 목적은 인류의 행복에 있고 기업은 하나의 수단이라는 그의 경영철학은 선이기 때문이다"
배석인 감독은 영화 얘기를 꺼냈다. 그는 "김 회장은 영화광을 넘어 프로의 경지에 올랐다"며 "주연 배우와 스토리를 줄줄 꿰고 있는 건 물론 비평에도 일가견을 지닌 가장 무서운 친구"라고 말해 주위를 웃기기도 했다.
알로에 강연은 84년 3월 시작됐다. 도산의 아픔을 딛고 재기한 직후였다. 그러고 보니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이 흘렀다. 첫 강연은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소강당에서 했는데 청중이 고작 3명에 불과했다. 나는 좌절하지 않고 끈질기게 강연을 이어갔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다 6개월 정도 지난 뒤에는 매주 개최했다. 기독교회관 대강당에 300명 이상 몰려들기 시작했고 주1회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게 무엇인지를 꿰뚫어 가려운 구석을 긁어준다는 자세로 임한 덕분이다. 신문 동정에도 강연 내용이 실리면서 복도는 더욱 북적댔다.
그래서 이듬해 봄부터는 금·토요일 주 2회로 늘렸다. 금요일에 300명, 토요일엔 200명 정도 모였으니 한달 청중만 2,000명이 넘은 셈이다. 어느 해 겨울에는 금요일이 마침 음력설과 겹쳐 강행여부를 놓고 고민했다. 차례 지내고 나들이에 바쁠 텐데 과연 올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원칙'을 지키기 위해 종로5가로 향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0명이나 참석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 단위 청중이 눈에 많이 띤 게 특징이었다. 내가 "자연과 더불어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그대로 사는 게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말하자 50대 중반의 여성이 대뜸 "무슨 말인지 너무 어렵네요"라고 했다. 장내는 일순 웃음바다가 됐다. 나도 허허 웃고는 말을 이어갔다. 자연식이란 어려운 게 아니다. 그저 농약을 치지 않고 기른 채소와 현미를 위주로 적게 먹으면 몸에 좋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는 "난 고기도 멀리하고 밥과 채소를 즐겨 먹는데 별로 건강하지 않다. 뭔가 이상이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다시 자연식 요법도 사람의 체질과 건강 상태에 따라 처방과 효과가 달라진다고 했다. 알로에가 몸에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버섯 균사체나 녹즙 등이 효과를 보는 이도 있다. 물론 병행해서 복용하면 더 좋은 예도 허다하다. 또 자연식 중심의 식습관과 충분한 수면, 적당한 운동, 그리고 정신적인 안정이 건강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혹자는 그런 말을 누가 못하느냐고 반문할 지 모른다. 그러나 진리는 어려운 게 아니다. 다만 현실을 핑계로 많은 사람들이 멀리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나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강연을 한다.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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